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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가례의 비극: 왜 우리 조상들은 미라가 되었나 (5)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사실 주자가 회곽묘를 창안하지는 않았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주자가 살아있을 당시 이미 그가 살던 중국 강남 땅에는 회곽묘라는 것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국내에는 아직 잘 안 알려졌지만 중국쪽에도 우리와 같은 회곽묘가 있긴 하다. 하지만 우리처럼 회곽묘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요장묘浇浆墓 혹은 삼합토 요장묘三合土浇浆墓라고 부른다. 이 무덤이 현재까지 고고학 발굴로 확인된 것으로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은 북송대에 속한다. 주희가 남송대 사람이므로 이 무덤은 주자가 생존하던 당시 훨씬 이전부터 만들어졌던 셈이다.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한 지역도 주희가 살던 양자강 일대로 내가 안다. 중국 쪽 자료에서 이 무덤을 만드는 방법을 찾아보면 우리 회곽묘 만드는 방법과 .. 2019. 5. 17.
한국 최고最古 사찰의 쌍두마차 도리사와 직지사 구미 선산 도리사다. 이 심각성이 제대로 대두하지 않으나 신라 기준으로 이 도리사가 신라 최초의 사찰이다. 삼국 중 신라가 불교 도입이 가장 늦다 하나 현존 사찰 중 위치가 파악되는 한반도 최고最古 사찰은 선산 도리사다. 대서특필해야 할 장소다. 이 사진은 김천 직지사다. 도리사와 동시에 창건한 신라 사찰이다. 한반도 가장 오래된 사찰은 도리사와 직지사다. 경주가 아니다. 왜 김천과 선산인가? 소백산맥을 넘어 경주로 향하는 교통로인 까닭이다. 사기와 유사에 의하면 신라 불교는 눌지왕 시대 고구려를 통해 유입됐다. 소백산맥을 넘어 고구려에서 불교가 침투하는 격절이 바로 김천이었다. 그 고개가 추풍령이다. 그 고개 지나 경주로 가는 길목에 도리사가 있다. 나는 언제나 사찰을 모텔로 보며 고속도로휴게소에 견준다. 2019. 5. 16.
직지사와 지끼사 사이 직지사直指寺.. 신라에 제도로서의 불교를 도입한 시초인 아도화상이 선산 도리사에서 황악산을 바라보며 저 산 기슭이 절을 세울 만하다고 손가락으로 곧장 가리켜 세운 절이라 해서 이리 부른다 하거니와 김천에선 직지사라 부르지 아니하고 지끼사라 발음한다. 뭐 구개음화니 하는 말이 있으나 신뢰하지 아니한다. 그런 직지사, 아니 지끼사가 이리도 아름다운 줄 미쳐 몰랐다. 의무감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대덕산 수도산 기슭에 살 적엔 소풍 갈 데라곤 수도산 청암사 밖에 없었노라 했거니와 그래서 그런 청암사가 죽도록 지겨웠노라 토로했거니와 김천고 입학과 더불어 대덕산을 떠나 김천 시내로 자취생활을 떠난 내가 그 삼년간 김천에 살 때는 놀러갈 데라곤 지끼사밖에 없었다. 마치 청암사가 그러했듯이 지끼사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 2019. 5. 16.
묘표墓表에 쓴 추사 글씨는 낯이 설다 추사 김정희가 만년에 쓴 비문, 임실서 발견송고시간 | 2019-05-16 14:07전주최씨 최성간 묘비…"장중하면서 짜임새 있는 작품" 광화문 복원 즈음, 그 현판 글씨를 어찌해야 할 지를 두고 한창 논란이 벌어지던 와중에 당시 문화재청장 유홍준은 얼마나 진심을 담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추사 김정희 글씨를 집자하는 방법도 있다는 말을 꺼냈다. 그러면서도 못내 캥기는 점은 있는지, 내 기억에 스스로 말끝을 흐리기를 "한데 말이야, 추사 글씨는 현판에는 안 어울려" 라고 했다. 아마 어떤 기자간담회 석상이 아니었는가 싶은데, 실은 기자들 반응을 떠보고자 함이었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그 자리서 내가 받아쳤다. "추사는 경복궁과 전연 관계도 없는 사람이다. 추사는 경복궁을 구경조차 못해 본 사람이다." 뭐.. 2019. 5. 16.
도선국사 등 뒤편에서 읽어낸 문자자료 오늘 아침 우리 공장 문화부에서는 박상현 기자가 작성한 아래 기사를 송고했다. 상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된다. 신라 명필 김생 글씨 추정 비석 발견…"유일한 친필"송고시간 | 2019-05-16 06:37박홍국 교수, 김천 수도암 '도선국사비'서 22자 판독정현숙 박사 "김생 글자 집자한 태자사비 글씨와 유사" 문제의 표석에 '개창주 도선국사開刱主道詵國師'라는 글자 뒤편에 무수한 글자가 있었지만, 대부분이 마모되고, 그러는 가운데서도 현재 육안으로도 대략 10글자 남짓 파악된다는 점을 나는 공개한 적이 있다. 마침내 박홍국 선생이 판독을 시도했나 본데, 저 기사가 종합한 것은 그 판독에 대한 중간 결산 정도가 아닌가 한다. 다만 김생金生 서체를 운위하는 대목에는 나 자신으로서는 판단을 유보하고.. 2019. 5. 16.
사잣밥, 딱 거기까지.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 김소월의 '초혼招魂' 중 초혼 의식을 치르고 있는 모습,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상례喪禮'에 관하여 글을 써야 겠다고 생각했을 때, 김소월의 '초혼招魂'이 먼저 떠올랐다. 시에 대한 해석은 논외키로 하고, 이렇게 단편적인 시부터 생각 난 것은 아무래도 나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아직은 한 발치 멀리 있다 생각하기 때문 아닐까. '초혼招魂'은 임종 직 후 밖에 나가서 떠나는 영혼을 부르는 의식을 말한다. 우리 곁을 떠난 이를 간절히 다시.. 2019.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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