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동성 광주에서 내가 남월국을 통해 투영한 위만조선은 다음과 같다. 아니 다음과 같아야 한다.
이는 언명이다.
첫째, 완연한 중국풍이다.
둘째, 위만을 비롯한 지배층 무덤은 산중山中이다.
광주 일대에서 출현한 남월국 궁서 유지와 조타의 아들인가 손자인 2대 문제 무덤, 그리고 광명시장 지하에 출현한 수갑 유적 등을 종합하건데, 이들은 주인공이 남월국이라는 증거가 없었으면 모조리 진한대 유적 유물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그만큼 남월국 문화 곳곳에는 낙양과 장안 중심 중국 문화가 짙게 침투해 있었다.
만세萬歲 와당? 장안長安에 갖다 놓으면 그대로 진한대 유물이다.
곡수연曲水宴?
이게 남월국 궁서 유지 한복판에서 출현했다.
문제文帝 무덤?
전실前室 후실後室 이실耳室 갖춤 기본 구조는 동시대 중원이랑 다를 바 없다.
물론 개중엔 소위 지역색을 띠는 점이 없지는 않지만 이를 침소봉대하여 남월국이 동시대 중국과는 전연 다른 세계에 산 듯이 말할 수는 없다.
더구나 문제 능에선 금루옥의金縷玉衣와 무수한 중원 문물이 출토되었으니 이것이 그대로 무대를 옮기면 한대 무덤이 된다.
내가 남월국에선 본 이런 모습은 틀림없이 그와 똑같은 길을 걸었을 위만조선에도 똑같아야 한다.
그렇다면 위만 무덤은 따로 평지에 봉분을 만들지 않고 산중에 광을 파고 만들었을 것이며 (금루)옥의로 시체를 감쌌다는 사실은 어찌 알 수 있는가?
때려죽여도 그의 무덤은 산중 깊숙히 어딘가에 기어들어가 있다. (June 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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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는 위만조선과 낙랑》(2) 내가 광동성으로 간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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