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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오빠를 가장 많이 닮은 동생》 (2) 언니의 꿈을 가로챈 동생

by taeshik.kim 2024.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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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김문희가 어떠하기에 그를 맹랑하다 하는가?

첫째, 언니에게서 꿈을 산 사건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즉위년 조다. 

“문무왕文武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법민法敏이다. 태종왕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 문명왕후文明王后인데, 소판蘇判 서현舒玄의 막내딸이고 유신庾信의 누이동생이다.

그의 언니가 서형산西兄山 꼭대기에 올라앉아 오줌을 누었더니 온 나라 안에 (오줌물이) 가득 퍼지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어나 동생에게 꿈 이야기를 하니 동생이 농담처럼 말하기를 ‘내가 언니 꿈을 사께’라고 하고는 꿈 값으로 비단 치마를 주었다.

며칠 뒤에 유신이 춘추공春秋公과 축국蹴鞠을 하다가 그만 춘추의 옷고름을 밟아 떨어뜨렸다. 유신이 말하기를 ‘다행히 우리 집이 가까이 있으니 가서 옷고름을 달도록 하지요’ 하고는 같이 집으로 가서는 술상을 차려 놓고 조용히 보희寶姬를 불러 바늘과 실을 가지고 와서 옷고름을 꿰매라고 했다.

하지만 언니가 일이 있어 나오지 못하였기에 동생이 나와서 옷고름을 꿰매어 주었는데, 그녀의 담백한 화장과 산뜻한 옷차림과 빛나는 아름다움이 눈부실 지경이었다.

춘추가 보고 마음에 꼭 들어서 혼인을 청하여 혼례식을 치렀다. 곧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으니 그가 바로 법민이다.  

文武王立 諱法敏 太宗王之元子 母金氏文明王后 蘇判舒玄之季女 庾信之妹也 其姊夢登西兄山頂坐 旋流徧國內 覺與季言夢 季戱曰 予願買兄此夢 因與錦裙爲直 後數日 庾信與春秋公蹴鞠 因踐落春秋衣紐 庾信曰 吾家幸近 請往綴紐 因與俱往宅 置酒 從容喚寶姬 持針線來縫 其姊有故不進 其季進前縫綴 淡粧輕服 光艶炤人 春秋見而悅之 乃請婚成禮 則有娠生男 是謂法敏 
 

일러스트=심수휘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1044310

 
이 일이 워낙이나 유명했던 듯 같은 골자를 갖춘 이야기가 삼국유사 기이편 ‘태종춘추공’ 조에도 다음과 같이 저록되었다. 

“처음에 문희의 언니 보희가 꿈을 꾸니 서악西岳에 올라가서 오줌을 누는데 오줌이 서울 안에 가득 찼다. 이튿날 아침에 문희에게 꿈 이야기를 하자 문희가 이 말을 듣고 ‘내가 그 꿈을 사께’ 라고 했다.

언니가 ‘무슨 물건으로 사려하니’라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비단 치마를 주면 되겠지’라고 했다.


언니가 그렇게 하자 해서 동생이 옷깃을 벌려 받으려 하니 언니가 ‘어젯밤 꿈을 네게 준다’고 했으며 이에 동생은 비단 치마로 값을 치렀다.

그런지 10일이 지났다. 정월正月 오기일午忌日에 유신庾信이 춘추공과 함께 유신 집 앞에서 공을 찼다.

이때 유신이 일부러 춘추의 옷을 밟아 옷끈을 떨어뜨리게 하고 말하기를 ‘내 집에 들어가서 옷끈을 달도록 합시다’라고 하자 춘추공이 그 말을 따랐다.

유신이 아해阿海를 보고 옷을 꿰매 드리라 하니 아해가 말하기를 ‘어찌 그런 사소한 일로 해서 가벼이 귀공자와 가까이한단 말입니까’라는 말로 사양했다.(고본古本에는 병 때문에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이에 유신은 아지阿之에게 이를 명하니 춘추공은 유신의 뜻을 알고 드디어 아지와 관계하고 이로부터 자주 왕래했다.” 

 
삼국사기에는 서형산西兄山, 삼국유사에는 서악西岳이라 보이는 이 산은 경주 분지를 중심으로 서쪽에 위치하는 진산鎭山인 선도산을 말한다.

서형산은 서쪽에 있는 산 중에 상위에 위치한다는 뜻이요, 서악은 글자 그대로 당시 신라 서울 금성의 서쪽에 있는 산이라 해서 이리 불렀다.

선도산仙桃山이라고도 신라시대에 부른 까닭은 이곳에 신라 건국시조 박혁거세를 낳은 어머니가 진좌鎭坐하는 곳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죽어 신라라는 국토를 지키는 신으로 화한 이 어머니를 선도산성모仙桃山聖母라 한다.

보희가 이곳에 올라 금성 전체를 물에 잠기게 하는 오줌을 쌌다는 이 꿈은 실은 그런 꿈을 꾼 여인이 천하를 호령할 아들을 낳을 전조前兆이자 예언이다.

그 오줌이 국토를 잠기게 하니, 오줌은 영웅의 자질을 지닌 아들이요, 그것이 서울을 뒤엎는다는 것은 천하를 호령한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이에서 그 영웅인 아들은 말할 나위 없이 문무왕 김법민이다.

그는 부친 생전에는 태자로서 백제 정벌전에 참전하고, 아버지가 죽은 뒤에는 왕으로써 당군과 연합해 고구려를 멸했으며, 곧이어 한반도 직접 지배라는 야욕을 노골화한 당 제국과 일전을 펼쳐 그들을 이 땅에서 완전히 축출했다.

문무왕 김법민이야말로 불세출의 영웅이었다. 

같은 삼국유사 ‘태종춘추공’ 조 말미에서는 “태자 법민法敏과 각간角干 인문仁問·각간 문왕文王·각간 노차老且·각간 지경智鏡·각간 개원愷元 등은 모두 문희가 낳은 아들들이었으니 전날에 꿈을 산 징조가 이에서 나타난 것이다”고 해서 법민 이하 기라성을 방불하는 아들들을 둔 전조가 바로 서악 오줌 누기 꿈이었음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에서 주목할 언급이 같은 삼국유사 기이편에 ‘가락국기駕洛國記’라는 제하로 금관가야 역사를 약술한 대목에 보이는 다음 대목이다. 

“신라 제30대 법민왕法敏王이 용삭龍朔 원년 신유辛酉(661) 3월에 조서를 내렸다. ‘가야국伽耶國 시조始祖 9대손 구형왕仇衡王이 이 나라에 항복할 때 데리고 온 아들인 세종世宗의 아들 솔우공率友公의 아들 서운庶云 잡간匝干의 딸 문명황후文明皇后께서 나를 낳으셨으니, 시조 수로왕은 어린 나에게 15대조가 된다. 그 나라는 이미 없어졌지만 그를 장사지낸 사당은 지금도 남았으니 종묘宗廟에 합해 계속하여 제사를 지내게 하라.’” 

이에서 계보에 착란이 있다.

이 가락국기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원전이 고려시대에 금관주지사金官州知事를 지낸 사람의 문인文人이 썼다고 했다.

이에서 노출한 가야사는 적지 않은 문제가 있는데, 앞에 보이는 계보 역시 착란이 있다.

김수로에게서 시작하는 금관가야는 건국이 서기 42년이라, 그 마지막 구형왕이 신라 법흥왕에게 투항할 때는 이미 역사 500년이라, 그 중간 계보가 왕청난 탈락을 보이지만, 겨우 남은 이는 9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거야 기록의 망실 탓으로 돌리겠거니와, 구형왕 이래 문명에 이르는 계보에도서 혼란이 있다.

김유신은 구형왕 직계 증손으로서, 그 아버지는 김서현金舒玄이니 이를 저에서 보이는 서운庶云이 바로 서현이다. 소위 음상사音相似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이 인용한 김유신비에서는 아버지를 소연逍衍이라 했다는데, 이 역시 음상사다.

이 중에서 소연이라는 이름은 도교, 특히 노자 문자와 더불어 그 근간을 구성하는 3대 성전인 장자莊子 냄새가 물씬하니 서현舒玄 역시 마찬가지다. 도교는 색깔로만 보면 玄의 철학이요 종교다.

서현의 아버지는 무력武力이니, 진흥왕시대에 한강 유역을 탈취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전쟁 영웅으로서 이 시대 금석문에도 모습을 드러낸다.

이 무력이 구형왕의 셋째 아들이다. 이것이 정확한 김유신의 계보다.

저 가락국기 계보는 착란이 극심하다는 점만을 이곳에서는 확인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나중에다시 말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으니 말이다.  

오줌 얘기가 나온 김에 저와 같은 영웅 탄생담 모티브가 실은 고대 페르시아에 이미 보인다는 점에서 완연 우리의 눈을 번쩍 뜨게 한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 장을 마련해 후술하고자 한다. 

(2016.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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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를 가장 많이 닮은 동생》 (1) 자매대전의 승자 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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