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서재에 보유한 《징비록懲毖錄》 역본 혹은 역주본은 다섯 종 정도에 이를 것이다. 축약본 어린이용까지 합치면 기하급수다. 개중에 나는 이재호 선생 역본을 선호한다. 이유는
첫째, 《징비록》을 《징비록》 그대로, 다시 말해 당파주의적 시각 그대로 읽고자 하는 흐름의 대표이기 때문이요
둘째, 번역의 안전성이라는 측면에서 이재호 선생 이상 가는 사람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세번째로 이 역본엔 원문을 첨부했으니, 석연찮은 대목은 나대로 다른 생각을 하게끔 하니 이 또한 요긴하다.
왜 《징비록》을 《징비록》의 시각대로 읽을 필요가 있는가? 그래야만 《징비록》이 제대로 보이기 때문이다.
《징비록》은 류성룡柳成龍(1542~1607)이 순전히 애끓는 애국충정과 과거를 반성하고자 쓴 글이 아니다. 그것은 철저히 본인, 혹은 그가 몸담은 동인東人, 혹은 그에서 갈라져 나온 남인南人의 시각을 두둔하며 그것을 투영한 자기변명이요, 당파주의 저술이다.
그가 말한 징비懲毖에서 그 자신은 단 한 번도 징비하는 대상이 된 적이 없으며, 그가 몸담은 같은 당파 인물들 행태는 그 어떤 경우에도 징비가 될 수 없는 이유가 이에서 말미암는다.
나는 항용 이른바 진보보수라는 개념이 한국현대사회에 성립한다면 진보가 구독해야할 신문은 조중동이며 보수가 정독해야할 신문은 한겨레경향이라고 주장한다.
한데 현실의 꼬라지는 어떠한가?
진보가 한겨레만 읽으니 세상이 보일리 있겠으며, 보수가 조선을 읽으니 그 반대가 보이겠는가? 매양 지가 듣고 싶은 소리만 듣고는 그게 정의라 부르짖으니 지나가는 똥개도 웃을 일이다.
《징비록》이 없었으면 어쩔 뻔 했냐고 생각한다. 얼마나 중요한 문헌인데..그래서 나는 서애가 좋다.
이토록 철저히 자기 중심으로, 편파적인 역사를 남겨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어슬프게 객관을 가장했더라면 골치 아플 뻔했다. (2015.3.1 글을 근간으로 삼아 조금 보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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