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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서예가 이완용] (9) 변화하는 법첩法帖 흐름을 잘타서 성공한 김규진

by taeshik.kim 2024.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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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평상심은 도道였는가 9>

 



그런 시대 흐름[사진이 법첩을 대체하는 시대 변화]을 잘 타고 성공한 서화가가 있었으니 바로 해강 김규진이다.

차별받던 평안남도 출신이었음에도 고종과 엄귀비 신임을 받아 영친왕에게 서화를 가르치기도 한 해강은,

법첩을 근거로 하는 걸 넘어 그 스스로 법첩을 만들어냈다.

 



그는 <해강난보>, <해강죽보> 같이 난초 치는 법, 대나무 치는 법을 직접 그리고 목판 또는 석판으로 인쇄해 책으로 엮어 팔았다.

당시로서는 그 인기가 대단한 것이어서, 1916년 초판이 나온 뒤 1918년 새롭게 꾸민 재판이 발간될 정도였다.

'근대 서화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살았던 김규진, 그도 이완용과 무관한 사이는 아니었다.



앞서 이완용이 <천자문>을 썼다는 얘기를 잠깐 했다.

1922년 9월 그의 <천자문>이 석판으로 인쇄 발간되는 바, 그 제첨題簽을 김규진이 썼다.

전서와 예서를 섞은 듯 묘한 필치인데, 이완용의 근엄하고 각 잡힌 해서와 썩 맞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일본식으로 꾸민 책 표지와는 제법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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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이완용] (8) 사진이 부른 법첩의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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