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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집 간행이 왜 목판으로 유행하게 되었는가
서울역사박물관 안내가 저렇다.
이런 말로 왜 목판에 환장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더구나 저런 문집 간행이 식민지시대에 가장 활발한 이유도 설명하지 못한다.
이미 구닥다리가 된 목판을 왜 굳이 저 시대에 제작했겠는가?
그 자체 신주였기 때문이다.
신주로서의 목판.
이는 심대한 환경 공해 문제를 유발했다.
똥폼 낸다고 제작하기는 했는데 보관이 문제였다.
무엇보다 돈이 열라 들었다.
근자에 왜 문중에서 목판 기증이 많은가?
간단하다.
돈 때문이다.
신주니 쉽사리 버리지도 못하니 글타고 안고 가자니 골치다.
그래서 다 바리바리 싸들고 박물관으로 기증 기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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