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otto는 그대로 철자대로 읽으면 지옷토 정도가 될 듯하나 이태리어는 단모음화 경향이 다대해 지오는 그대로 죠가 된다.
현대 한국어에서 조와 죠는 구분되지 않는다. 이젠 하나를 버릴 때다.
또 라틴어나 이태리어는 복자음을 다 발음한다. 그래서 Giotto는 좃토가 된다.
이 때문에 Giotto는 한국에서도 유명하다.
왜 좃또니깐.
이태리 출신 미술가로 유명한 이가 많지만 그 사람들 최고참이 저 조토다.
1267년 무렵에 피렌체서 태어나서 1337년 고향서 죽었다 한다.
같은 피렌체 출신 단테가 1265~1321년이 생몰년이니 활동연대가 대략 겹친다.
Giotto는 이름이라 성은 디 본도네 di Bondone, di는 of에 해당하고 Bondone는 출신지 혹은 가문일 텐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 da Vinci와 근간이 같다.
그는 중세시대 말을 살다 갔기에 그의 작품은 시종 그 시대 지배 사조인 종교 경도 성향을 벗어날 수 없다.
예술, 특히 미술이 기독교에서 벗어나기는 내가 아무리 봐도 카라바조에 와서야 가능했으니 그 카라바도 실상은 7할이 종교적이다.
암튼 조토가 그리 유명하다 하지만 나는 그가 왜 유명한지는 모르겠다.
남들이 유명하다 하니 나도 덩달아 그런갑다 하고 또 그의 작품을 만나면 와 좃또다 하지만 솔까 왜 좃또인지는 여전히 모른다.
다만 그의 작품으로 구찌 큰 것들이 동시대 작가 누구보다 많이 남아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막연한 생각은 해 본다.
그 우람한 피렌체 종탑도 그의 설계요 기타 이곳저곳, 특히 피렌체를 중심으로 이태리반도 중부와 북부 일대 예배당 성당에 유독 그의 손끝을 빌린 벽화가 많이 남았다.
그제 아시시에서 본 그곳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도 그렇고 오늘 조우한 파도바 스크로베니 예배당
Cappella degli Scrovegni 벽화도 그렇다.
아시시 대성당은 워낙 규모가 커서 그 전체 벽화가 그의 것은 아니지만 목이 가장 좋은 데는 그의 차지다.
파도바 예배당은 규모가 작아서이겠지만 단독 수주라 그 전체가 그의 그림이라 한다.
저런 성당 벽화는 쉽게 교체되지 않을까?
기존 그림이 맘에 안 들어 새로운 작가 물색해 그 위에 새로운 작품을 입히든가 할 수도 있을 텐데
이런 일이 분명 있을 텐데 어떤지 모르겠다.
창건 이래 그런 작업이 없다면 나는. 결국 돈 문제로 본다.
저런 대규모 공사를 수주하면 재능기부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시다도 몇 십명 붙었을 테고 무엇보다 대롱대롱 밧줄 타고 그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
아시바 비계 설치 비용만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이는 물론이고 제반 인부 비용, 또 그 막대한 물감 조달 비용 등등 어마어마한 예산이 투입됐을 것이다.
그래서 한 번 그린 벽화는 손을 대기가 쉽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그거 새로 그릴 비용이면 차라리 새로 짓고 말지.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을 미켈란젤로 그림이 있다 해서 상찬하거니와
오늘 둘러본 스크로베니 예배당은 저와 우선 규모가 비슷하거나 조금 작을 것이다.
영상 촬영이 끝나고서 열린 예배당을 들어서니 바닥 가까운 벽면을 제외하고선 기독교 소재 성화들이었으니
그러고 보니 어림짐작으로 바닥 기준 10~15미터가량될 아치형 천장 쪽은 이렇다 할 그림이 없었던 듯한데
이는 아무래도 그 안전한 작업을 뒷받침할 아시바 설치 문제에서 비롯하지 않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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