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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동네 담장이 되어버린 월남사 석탑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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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사지 2013년 봄. 저 뒤 월남사를 표방한 사찰은 신흥이다.

 

월남사 터를 지나며[과월남사유지過月南寺遺址]

이곳이 옛 월남사 있던 자리라 此昔月南寺。
지금은 적막하고 안개만 자욱하네 煙霞今寂寥。
빛나던 전각 얼미치던 이 산에 山曾暎金碧。
저 물만 세월따라 흘러왔네 水自送昏朝。
옛 탑은 마을 담장 기대고    古塔依村塢。
조각난 빗돌 돌다리 만들었네 殘碑作野橋。
無라는 글자 본디 비결일진대  無一無元寶訣。
흥하고 망함 물어 무엇하랴?  興廢問何勞。

 
임백호집林白湖集 권1 오언근체 五言近體에 수록된 시라,

옮김은 임형택 이현일 편역 《백호시선》(창비, 2011)에 기대었지만, 지금 언뜻 살피니 조금 살펴야 할 데가 있는 듯하지만,

여유가 없어 물리고 전재하는 수준에서 소개한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대의에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진각국사 귀부 앞에서

 
이 시가 말하는 월남사 터란 곧 지금도 남은 강진 월남사터를 말하거니와,

월출산 남쪽에 정좌한 이곳에는 백호 임제林悌(1549~1587)가 말하는 그때나 지금이나 사정이 썩 나을 바는 없어,

그 월남사는 백호 당시에 이미 폐허가 되고 석탑과 그 주변 사리탑 잔편만 남았으니 

저 시는 항용 월남사 역사를 논할 적에 이미 임진왜란 이전에 월남사를 폐사가 되어 버렸고 그 자리에는 동네가 들어섰음을 웅변하는 증거로 든다.

저 시가 말하는 구절 중


옛 탑은 마을 담장 기대고[古塔依村塢] 조각난 빗돌 돌다리 만들었네[殘碑作野橋]이라는 증언은 매우 중대하거니와,

왜 비석은 쪼가리쪼가리 나서 다른 건축자재로 쓰였을까?

저 망가진 비석은 진각국사비眞覺國師碑를 말한다.

저 비석은 그래도 제법 남기나 했지, 나머지 고승들 비문은 거개 가루가 되고 말았다.

잦은 탁본 요구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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