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서나 삼국지가 그리는 3세기 중후반 이전 삼한 사회를 다름 아닌 역사학도나 고고학도들이 바로보는 관점을 어찌 일률로 논하겠느냐마는 나는 원시미개주의 그 짙은 그림자를 본다.
간단히 말해 제대로 된 국가 체계, 이른바 중앙집권적 통제 질서가 확립되지 아니했다는 관점이 널리 분포하는데
이는 이 시점, 그러니깐 3세기 중후반을 기점으로 삼아 이후 신라와 백제를 제대로 된 국가 혹은 왕조로 보려 한다는 점에서 내 판단은 유효하다가 본다.
더 간단히 말해 3세기 중후반 이전 신라 백제는 국가다운 국가, 왕조다운 왕조도 아니요 동네 꼬꼬마 대장 같은 그런 존재로 본다는 뜻이다.
이 삼한 사회가 그리 간단한가?
역사학이나 고고학은 허심하게 넘기는 대목으로 양잠이 있다.
마한 사람들은 농사와 양잠을 할 줄을 알며, 길쌈하여 베를 짠다. 큰 밤이 산출되는데 그 크기가 배만큼 크며, 꼬리가 긴 닭이 있는데 꼬리의 길이는 5尺이나 된다. [馬韓人知田蠶, 作緜布. 出大栗如梨.] (후한서 한전)
마한은 (삼한 중에서도) 서쪽에 위치한다...(그들은) 곡식을 심으며 누에치기와 뽕나무 가꿀 줄을 알고 면포綿布를 만들었다. [馬韓在西. 種植知蠶桑, 作綿布.] (삼국지 한전)
이 양잠 말이다. 이게 그리 간단하게 보이는가?
양잠을 했다는 것은 비단옷을 만들어 입었다는 뜻이요, 실제 삼국지에서는 그들이 면포綿布를 만들었다 했다.
그렇다면 양잠을 그네들은 가내수공업으로, 다시 말해 그네들 식구가 입을 요량으로 만들었겠는가?
이 허심한 대목이 심각한 까닭은 바로 이에서 말미암는다.
비단을 생산하고 비단을 유통하며 비단을 소비하는 교역망이 확립된 사회였다는 뜻이다.
더 간단히 말해 물론 있는 놈들 이야기겠지만, 돈 권력 자랑하는 놈들은 비단옷을 걸치고 거리를 활보했다.
이 모습 상상이나 되는가?
3세기 중후반 이전 삼한사회에서 돈 있는 놈들이 비단옷 걸치고 거덜먹거리며 거리를 활보하는 이 모습이 말이다.
삼한은 그런 사회였다.
물론 그때도 없는 사람들이야 거지를 방불했겠지만, 비단 생산을 위한 양잠을 장려하며, 그런 양잠을 통제하는 권력이 있고, 그런 시장을 운영하는 교역망 사회였다는 뜻이다.
비단 생산 그 자체만 해도 그렇다.
이 공정이 어떻게 되는지 한 번만 생각해 봐도 그런 시스템을 운영한 저 사회가 얼마나 복잡다기한지를 단박에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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