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劉邦은 통일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무장들을 포섭하면서 각종 합종연횡을 불사하니
이들은 크게 외방 제후왕과 근시직으로 구분된다.
전자의 대표 주자들이 회음후淮陰侯 한신韓信과 한왕韓王 한신韓信, 양왕梁王 팽월彭越, 회남왕淮南王 영포英布, 연왕燕王 노관盧綰, 장사왕長沙王 오예吳芮 등이며,
후자의 대표들로 장량張良 조참曹參 소하蕭何 주발周勃이 있다.
이른바 이성異姓 제후왕은 거의 다 처단되고 유방이 죽을 무렵엔 마왕퇴 무덤과 밀접한 오예만이 나중까지 왕국을 지속하니,
이 오예가 처단되지않은 이유는 유방보다 일찍 죽었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과 더불어 장사국 대권은 그의 아들로 간 데다,
서안에서 장사국은 거리까지 멀어 유방이 더는 장사국을 위협으로 여기지는 않은 듯하다.
지금의 북경 일대에 정착해 연왕에 책봉된 노관은 기원전 194년, 유방의 죽음과 더불어 곧바로 중앙 황실에 의한 토벌 대상에 포함되어 흉노로 도망갔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한 제국이 성립하는 과정에서 유방을 도와 군사방면에서 혁혁한 전과를 내는 팽월과 한신, 그리고 영포라는 이른바 3영걸이 처단되자 노관 역시 진희陳稀라는 사람 반란에 연루되고,
이 과정에서 흉노와 내통했다는 혐의를 받아 토벌된다.
기록에 의하면 노관은 앞서 처단된 한신 영포 팽월과는 달리 잘하면 구제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아 자신을 토벌하러 나선 유방에게 싹싹 빌 생각이었다.
하지만 변수가 생겼으니 그만 유방이 죽고 말았다.
그렇다면 노관은 무엇을 믿었던가?
그는 유방과 같은 지금의 산동성 패현沛縣 출신이며 공교롭게 유방과는 같은 마을에서 같은 날 태어나 친구로 자랐다.
더구나 이들 아버지끼리도 잘 아는 사이였다.
유방이 반란을 선언하고 조폭들을 이끌고 패현을 점령하고는 스스로 패공沛公을 선언한 그때부터 노관은 이미 유방과 같은 길을 걸었다.
그런 그였기에 한신 팽월 영호와는 달리 싹싹 빌면 목숨만은 부지할 줄로 안 듯하다.
하지만 그 키를 쥔 유방이 죽었으니 온 가족을 이끌고 흉노로 투항했다.
당시 연국은 처음에는 번쾌가 토벌에 나섰다가 중간에 모함을 받아 삭탈되고 주발이 대신 토벌했다고 기억하거니와 이리해서 노관이 꿈꾼 연나라 왕국 건설은 산산 조각났다.
이 노관의 연국燕國이 붕괴할 때 동쪽으로 도망친 무리가 있다.
당시 연국은 동쪽으로 기자조선과 국경이 닿았다.
이 무리가 살려달라 들어오니 기자조선 준왕準王은 그들을 받아들여 그 서쪽 변경, 그러니깐 노관의 연국과 국경을 접한 곳 백리 땅을 떼어주고 제후왕으로 봉한다.
그가 바로 위만衛滿이다.
이로 볼 때 기자조선 또한 당시 그 자체로는 봉건제를 채택해 지방은 짜개서 제후왕을 책봉하고 그들을 통해 전역을 통치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대 위만, 그리고 고조선은 그 자체로 움직이는 정치 단위가 아니라 그들이 원했건 하지 않았건 세계의 일원이었다.
진秦 제국이 붕괴하고 한 제국으로 중국이 재통일할 무렵 중국 각지에서는 반란이 일어나고 북쪽의 강자 흉노가 움직였다.
이런 움직임을 고조선이라고 넋놓아 기다릴 수는 없어 서북쪽으로는 신흥 강국 한과 흉노의 동향을 체크하며 또 다른 주변으로는 남쪽 진국辰國이며 북쪽 다른 정치체와는 새로운 국제질서 재편을 획책했다.
그로부터 백년이 흘러 한과 흉노가 세계대전을 벌이자 위만조선은 친 흉노 노선을 시종해서 유지했다.
흉노를 압박하면서 한 제국은 먼저 그들의 지원 후원 세력이 될 만한 곳들을 외교 정책을 통해 단절하고자 한다.
이런 외교 정책이 동쪽 방면에선 잘 드러나지 않으나 서쪽 방면을 보면 명백히 보인다.
한은 서역 각국이 흉노와 통하는 길을 끊고자 했다.
이들이 바로 흉노의 우익右翼이다.
한 무제 유철劉徹이 위만조선을 칠 때 그 침공논리가 왜 흉노의 좌익左翼을 친다는 말이었는지 비로소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흉노의 좌익이라는 말..이 단순한 말 한 마디는 이리도 무섭다.
이를 통해 이 무렵 위만조선이 중간에 길을 막고 그 주변 제국이 중국에 통하는 길을 막았다는 한 제국 논리 역시 우리는 비로소 그 의미를 안다.
흉노와 위만조선은 비록 기록엔 탈락했지만 무수한 교류가 지속적으로 있었다.
아마 두 왕조는 혼인으로 얼키설키 얽혔을 것이다. (2015.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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