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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다.
뭐가 보이는가?
께브랑리 아냐?
아프리카 목각 제품들?
우라까이다.
표절이다.
(2024. 7. 10)
***
하늘 아래 새로움 없다.
사진의 등장에 고사 위기에 몰린 미술, 특히 회화는 살 길을 찾아 나서게 되는데, 피카소 시대 피카소와 동료들은 그 새로움을 찾아 선사로 여행을 떠나고 이방異方을 찾는 탐문 여행에 나섰다.
그런 그네는 구석기 벽화들에 환호하고, 물밀듯 밀려드는 아프리카 미술에 광분했다.
왜?
거기에 새로운 미술이 찾던 돌파구, 혹은 빛, 혹은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다.
저 기다란 목은 피카소 말고도 모딜리아니가 환장했다.
얼굴도 도형화할 수 있다는 빛을 봤다.
전 시대 고흐가 우키요에에서 본 빛, 그건 이미 그 전배前輩가 소비했으니, 소비는 식상이라
식상을 깨뜨리는 그 무엇하는 힘.
이를 원시로 불렀는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그 힘을 찾아 그네들은 아프리카로,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로, 폴리네시아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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