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스톤헨지 꺼낸 김에 이 이야기도 덧붙여 둬야겠다.
나는 스톤헨지 가서 내가 보고들은 것과 똑같아서, 얻은 것이 없어 허망했다 했지만, 안 가 본 내 친구들 듣기 좋게 하는 소리요 얻은 것이 왜 없겠는가?
첫째 환호의 발견이다.
우리가 보는 그 스톤헨지는 내가 간접으로 경험할 때는 이 환호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고 안다 해도 그냥 스치고 말뿐인데, 가 보니 그 거대한 돌덩이 구조물을 빙둘러 가며 대형 환호가 있었다.
이것이 무슨 경계 표시일 것임은 분명했다.
이는 훗날 다른 지역, 예컨대 아일랜드 같은 신석기시대 선사시대 유적 답사에서도 요긴하게 작동했다.
그쪽도 예외없이 참호가 있었다.
둘째 그 단독성이 아님의 확인이었다.
저와 아주 흡사한 같은 신석기시대 기념물이 스톤헨지 말고도 포진했으니 일단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인근 유사 원형 유적만 해도 우드헨지Woodhenge니 해서 두 군데가 더 있었다.
개중 시간관계상 다 돌지는 못하고 우드헨지 한 곳만 더 봤다.
셋째 저 스톤헨지를 만들 무렵 그네들이 남긴 대형 봉토분의 확인이었다.
스톤헨지는 지금 기준으로 꽤 멀리 떨어진 지점에 매표소가 있고 그에서 걸어가거나 관람용 차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는데, 거리가 꽤 있었으니 그 넓은 들판을 오가며 그 인근 들판에 한 눈에 봐도 무덤일 법한 거대한 봉분 서너 곳이 보였으니 이곳을 안내한 당시 런던 유학생 이화종 군 말로는 무덤이라 했다.
이는 나중에 아일랜드 가서 직접 확인했으니, 저 신석기시대 초대형 봉토분이 아일랜드엔 널부러져 있었다.
스톤헨지 쪽에서는 그것을 발굴조사를 했는지 모르겠는데, 했다면 그 간이 기념관에 그와 관련한 자료 소개가 있어야 하는데 없는 걸 보면 아직 하지 않았나 싶기는 하다.
우리는 선사시대, 특히 청동시시대 마을 유적을 이야기하면서 환호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 양태를 보면 이젠 파지 않아도 알 수 있으니, 제법 공간이 확보되는 얕은 언덕배기 한 쪽 면을 따라 공동체를 구성하며 그 가장 사방을 조망하기 좋은 지점에는 예외없이 마을회관이라 할 만한 거대한 공공건축물을 세우고
그 마을 경계는 대체로 환호를 둘러 경계를 표시하는데 이런 양상은 실은 선사시대 지구촌 전체를 통털어 비슷한 양상이다.
나는 매양 국사가 아닌 세계사를 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데, 요새 새삼 더 절감하지만, 진짜로 우리것 아닌 것들을 더 많이 봐야 한다.
이곳에서 그리 박터지게 싸우는 문제들을 국경을 벗어나면 꼭 중국 일본이 아니라 해도 저짝에는 관련 자료 널부러졌고, 그에서는 상대적으로 우리보다는 훨씬 실물자료가 양호하고 많아 싸울 건덕지가 되지 않는 것 천지다.
나가서 봐야 한다.
것도 많이많이 봐야 한다.
하지만 내가 이쪽 업계 종사자들이랑 나도 하도 많이 다녀봤지만, 다니면서 진짜로 공부하고자 하는 열정 불타는 놈 몇 못 봤다.
특히 교수놈들..이 놈들 골프에 술에 환장한 놈들이라, 공부는 팽개치고 안중에도 없었다.
이런 놈들이 얄팍한 경험 한두 개로 지가 다 아는양 사기치고 다니더라.
뭔 되도 않은 후카시만 열라 잡더라. 아는 것도 없는 놈들이 무슨 후까시? 하긴 아는 게 없으니 없으니 그거라도 잡아야지 어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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