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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페니키아 식민도시 카르타고, 혈통은 시칠리아!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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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타고 제국의 몰락 J. M. W. Turner, The Decline of the Carthaginian Empire (1817)

 
한니발 신화로 대표하는 카르타고는 그 연원이 페니키아 식민도시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실제 카르타고를 이룩하거나 지탱한 사람들도 레반트 지역을 근거지로 삼는 페니키아인들이었을까? 

페니키아와 포에니 문명Punic civilisations에 대한 새로운 DNA 연구는 이런 통념을 배반하는 이야기를 한다.

카르타고인(포에니족) 대부분은 실제로 레반트 출신이 아니라 시칠리아와 에게해 출신으로 북아프리카 영향을 크게 받은 사람들과 유전적 유사성을 공유했다는 것이다.

네이처(Nature) 저널에 최근 발표된 이 연구는 북아프리카, 레반트, 이베리아 반도, 시칠리아, 사르데냐, 이비자 지역 페니키아와 포에니 유적에 묻힌 인류 유해의 유전체 샘플을 분석했다.

3,0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페니키아 문명은 현재 레바논으로 추정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페니키아 도시 국가들이 다른 문명에 정복당했음에도 페니키아 문명의 문화는 광범위하게 확장되었다.

독일 막스 플랑크 진화 인류학 연구소 Max Planck Institute for Evolutionary Anthropology 유전학자 하랄트 링바우어Harald Ringbauer와 그의 동료들이 수행한 새로운 연구는 레반트 페니키아인과 연관되어 있는 카르타고인의 기원과 조상에 대한 오랜 생각에 의문을 제기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레반트 페니키아인들은 기원전 6세기에서 2세기 사이 서부 지중해 지역 카르타고 정착에 유전적으로 크게 기여하지 못했지만, 강력한 문화적, 역사적, 언어적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 발견은 유전학자들이 유럽과 북아프리카의 고고학자들과 협력하여 지난 2세기 동안 페니키아 양식 무덤에서 발굴된 유골을 확인한 후 나온 것이다.

수백 명의 유해와 유골에서 추출한 DNA를 5년 이상 추적한 결과, 페니키아인 유전체 100개 이상이 생성되었다.

링바우어는 "레반트 페니키아인이 지중해 서부 및 중부 포에니 문화에 직접적인 유전적 기여를 한 사례는 놀랍게도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발견은 페니키아 문화가 대규모 집단 이주가 아닌 역동적인 문화 전파 및 동화 과정을 통해 어떻게 확산되었는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발견은 페니키아 정착민들이 지중해 전역으로 식민지를 찾아 이동했을 때, 나중에 페니키아의 언어, 종교, 문화를 받아들인 지역 주민들이 합류했음을 시사한다.

무역, 통혼, 그리고 인구 혼합 또한 공동체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연구 결과는 동질적인 레반트 혈통보다는 북아프리카와 에게해 지역 공동체의 유전적 특성이 다양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 저널은 또한 북아프리카의 페니키아 식민지였던 카르타고가 특히 포에니 인구의 유전적 구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한다.

카르타고가 권력을 잡으면서 북아프리카 혈통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링바우어에 따르면, 이러한 혈통 혼합은 페니키아 전초 기지 간 무역을 통해 유지되는 소위 '지중해 고속도로'를 통해 사람들이 연결되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중동의 페니키아 도시 국가들이 몰락한 후, 이 지역 출신의 사람들은 지중해 고속도로에서 단절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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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연구결과를 의외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구 구성이라는 측면에서 모든 인구이동은 현지 사회 구성원과 분포 양상을 볼 때 지배 계층은 언제나 소수인 까닭이다. 

식민지시대 조선을 생각해 보라. 

그 35년은 말할 것도 없이 일본에 의한 식민 경영 시대였지만, 조선반도에 거주하는 일본인 몇 명이었겠는가?

현지 조선인과 비교할 때 새발의 피였다. 

더 중요한 것은 권력과 문화 이동이다. 

이 식민지시대 훗날 조선 땅 유골 분석해 봐라.

일본 DNA 몇 프로나 나올 것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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