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chaeologists in Peru have uncovered nearly 200 sticks threaded with human vertebrae at a 16th-century burial site linked to the Indigenous Chincha people.
고고학자들이 16세기 페루 매장지에서 원주민 친차족Chincha people과 관련된 사람의 척추뼈를 꿴 약 200개 꾸러미를 발견했다.
1400년대에 잉카 제국의 반자치 지역이 되기 전, 리마 남부 지역을 지배한 친차족은 독특한 장례 풍습을 남겼다.
이런 막대기 대부분에서는 4개에서 10개 척추뼈를 뀄지만 어떤 막대기에는 두개골이 얹혀 있는 뼈가 무려 16개나 있다.
근처에 있는 두개골들은 이 척추뼈를 꿴 막대기가 훨씬 더 정교한 사후 복원의 일부였음을 암시하며, 죽음과 추모를 둘러싼 고대 의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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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피면 이런 소식은 2022년 2월에 도하 언론을 통해 공개됐으니, 좀 더 상세한 정보를 보완하면 다음과 같다.
저 친차족은 페루 해안 원주민들로 흩어진 시신 유해를 수습하고선 척추뼈는 갈대 줄기reed posts에 꿰어 넣었을 것으로 본다고.
이런 뼈 꿴 줄기들이 발견된 지점은 페루 친차 계곡Chincha Valley 돌무덤들stone tombs이라,
이를 연구한 사람들은 스페인 사람들이 원주민 무덤을 약탈하고 훼손한 유해를 다시 조립하기 위해 이랬을 것으로 추정한댄다.
저 계곡 40제곱킬로미터(15제곱마일) 구역에서 44개 장례 유적을 조사한 결과 총 664기에 이르는 무덤이 속내를 드러냈다. 그 결과 척추뼈를 꿴 줄기는 총 192구가 발견됐다.
연대 측정은 뼈와 갈대 줄기를 시료로 삼아 탄소 연대를 측정했다.
그 결과 서기 1450년에서 1650년 사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이때 잉카 제국이 무너지고 유럽 식민지 개척자들이 권력을 공고히 하던 시기였다.
나아가 이 무렵 정복자인 스페인 사람들은 원주민 무덤을 자주 훼손했다.
이에 친차족은 훼손된 매장지를 복원하기 위해 약탈당한 무덤을 다시 찾아 척추뼈를 갈대에 꿰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연구 책임자인 제이콥 봉거스Jacob Bongers(영국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교 세인즈버리 연구소 Sainsbury Research Unit at the University of East Anglia 고고학 선임 연구원)는 말했다.

이런 꿰미가 192점이나 발견되고 친차 계곡 전역에 널리 분포한다는 사실은 여러 집단이 공동으로 협력하고 대응했으며, 이 흥미로운 관습이 훼손된 시신을 처리하는 적절한 방식으로 여겨졌음을 의미한다.
갈대 줄기에 꿴 척추뼈 대부분은 출파chullpa라고 불리는 크고 정교한 석조 무덤 안팎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런 무덤에는 보통 여러 구 시신이 함께 매장됐다.
심지어 한 출파에서는 수백 개체 유해가 발견되기도 했다.
매장을 담당한 사람들은 친차 왕국 일원이었으며 잉카 제국 이전 시기인 후기 중기 시대에는 친차 계곡을 지배한 부유하고 중앙 집권적인 사회였다.
친차 왕국은 한때 약 3만 명 인구를 보유했으며, 서기 1000년에서 1400년경까지 번영을 누리다가 15세기 말 잉카 제국과 합병되었다.
그러나 유럽인들이 도착하고 기근과 전염병을 퍼뜨리자 친차 인구는 1583년 이미 979명으로 급감했다.
역사 기록에는 스페인인들이 계곡 전역 친차 무덤을 자주 약탈하고 금과 귀중한 유물을 훔치고 유해를 파괴하거나 훼손했다고 했다.
뼈 꿰미는 79점이 면밀히 조사됐다. 성인 또는 어린이 척추뼈 모음이었다.
이 꿰미에는 한 사람 뼈가 들어 있었지만, 그 뼈는 불완전했고 대부분이 분리되어 순서 또한 어긋났다.
이는 뼈를 꿰는 행위가 원래 매장의 일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연구진은 시체가 부패한 후에 누군가가 척추뼈를 모아서 꿰맨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아마도 일부 뼈는 약탈로 훼손된 뒤에 꿴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 고고학이 말하는 세골장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안데스 문화권은 시신의 온전함과 완전성을 보존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으므로 친차족이 약탈당한 무덤을 다시 찾아 흩어진 유해를 이런 방식으로 복원하여 유해의 온전함을 어느 정도 복원하려 했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 설명이다.
이러한 뼈 꿰기와 같은 고대 장례 관습은 오래전 공동체가 시신을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한 귀중한 단서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시신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문화를 어떻게 정의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서이기도 하다고 연구진은 평가한다.
이 연구 결과는 2022년 2월 2일 발간된 Antiquity 저널에 게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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