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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런던탑을 뚫고 나온 500년 전 두 해골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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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옥과 처형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런던탑Tower of London의 웅장한 석벽과 어두운 역사 아래, 2019년 땅속에서 가슴 아플 수 있는 비밀이 드러났다.

성 베드로 아드 빈쿨라 예배당Chapel of St. Peter ad Vincula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발굴 작업 중, 고고학도들이 여성 한 명과 어린이 한 명 유골을 발굴했다. 

이 발견은 한때 이 상징적인 요새 일부였을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은밀하고도 드물게 엿볼 수 있게 해 주었으며,

런던탑을 오로지 왕실의 비극적인 최후와 비극적인 종말의 장소로만 여긴 기존 서사에 의문을 제기했다.

장미 전쟁Wars of the Roses과 튜더 왕조Tudor의 시작을 아우르는 격동의 시기인 1450년에서 15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두 무덤은 런던탑의 그늘 아래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조용히 보여준다. 

사망 당시 35세에서 45세 사이로 추정되는 여성은 관에 안치된 흔적이 있었는데, 이는 어느 정도 존경이나 지위를 암시하는 세부 사항이었다. 

일곱 살쯤 된 아이는 수의에 정성스럽게 싸여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 모두 동쪽을 향해 안장되었는데, 이는 당시 널리 퍼진 기독교 장례 관습을 반영하는 일반적인 관행으로, 부활과 동방에서 오는 그리스도의 강림에 대한 믿음을 상징한다.

유해에 대한 골상학적 분석은 그들의 삶에 대한 더 깊은 통찰을 제공했다.

여성과 아이 모두 질병 징후를 보였는데, 이는 중세와 초기 튜더 시대의 고된 삶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여성은 만성 요통chronic back pain 징후를 보였는데, 이는 육체노동으로 점철된 삶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주목할 점은 두 무덤 모두에서 껴묻거리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들이 높은 지위에 있거나 개인 소지품과 함께 매장된 사람이라기보다는 런던탑과 관련된 일상적인 주민이나 근로자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시사한다.

더욱이, 뼈에 폭력 흔적이 전혀 없다는 것은 이들이 런던탑에서 악명 높은 처형수들 중 한 명이 아니었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오히려 이들은 왕립 조폐국Royal Mint, 왕립 무기고Royal Armouries, 또는 요새 내 다른 중요한 시설에서 일한 여러 노동자들 가족 구성원이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들은 그들의 봉사의 일환으로 성벽 안에 거주했을 것이다.

이 발견은 런던탑의 극적인 역사와 대조되는 강력한 증거로, 가족이 살고 일하고 궁극적으로는 묻히는 공동체로서의 런던탑의 역할을 조명하며,

그들의 삶이 이 영원한 역사적 랜드마크의 구조에 깊이 새겨져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 유해는 런던탑 사제가 인도하는 가운데 성 베드로 아드 빈쿨라 예배당에 재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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