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통괄할 때 조선사가 기이한 점이 한둘이리오만 개중 하나가 왕궁을 무대로 전투다운 전투, 전쟁다운 전쟁은 단 한 번도 벌어진 적이 없다는 사실도 특기할 만하다.
물경 존속기간이 500년에 달한다는 조선왕조가, 외적 침입이 끊이지 않았고 반란 역시 끊이지 않은 저 역사에서 어찌 이것이 기이하지 않겠는가?
왜 그럴까?
외적 침입은 고사하고 내란 소식 하나에도 겁이 나서 일단 튀고 봤다.
들고 튄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방어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버틸 만한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방어력 부재를 증명하는 가장 큰 증좌가 바로 해자의 부재다.
해자가 있고 없고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를 위해 해자가 무슨 기능을 수행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이는 많은 지적이 있듯이 첫째는 장식 기능, 둘째는 방어기능 강화다.
전자는 왕궁을 더 장엄하게 만드는 구실을 말하니, 그래서 한껏 왕궁 해자는 더욱 뽀대를 내는 방향으로 건축을 이끈다.
이 기능이야말로 건축의 심미성 측면에서 중요하다 보지만 그것을 이끌 해재다운 해자가 조선엔 없었다.
그 장식에는 당연히 토목 건축이 따르며 조각이 대표하는 미술이 따른다.
그 등장 변화 발전이 그에서 어떤 변화를 불러왔는가? 이것이 어찌 중요하지 않겠는가만 조선은 그럴 씨조차 뿌리지 않았다.
다음으로 방어력 측면에서 보면, 있고 없고는 천양지차가 나서, 옹성甕城 여부를 판가름한다.
해자가 없는 성곽은 곧바로 외부 적에 내부를 노출한다. 해자는 그 공격 예봉을 무력화하거나 둔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성벽을 뛰어넘기 전에 위선은 해자를 돌파해야 하니, 이를 둘러싼 다종다양한 군사전법이 개발 혹은 동원된다.
저 해자를 무력화하려면 예컨대 가장 전통하는 수법이 메우는 것이라, 이를 메우기 위해 무엇을 어찌했는가?
이 문제는 군사사 방면에서 매우 중요하며, 나아가 그것을 막기 위한 방책 혹은 그 자체를 축조 운영하는 과정에서도 긴요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조선왕조는 500년이라는 기나긴 존속 기간 중에 왕궁을 무대로 전투가 벌어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외적 혹은 반란군이 들이치기만 하면 일단 튀고 봤다. 어디로? 산성으로 튀고 봤다.
전국시대 이래 일본사를 보건대 그 주인을 바꾼 중요한 전투는 모름지기 거대한 해자를 갖춘 주요 성채에서 벌어지는데 반해 조선왕조는 그런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왜? 일단 튀고 봤기 때문이다.
옹성 자체가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그 옹성이 불가능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개중 하나가 바로 저 해자의 부재였다.
해자가 없는 성채는 지킬 수도 없고, 그냥 있다간 몰살하기 십상이다.
조선왕궁은 해자가 없다. 아니 적지 않은 성채 중에서 해자를 갖춘 데가 한 손에 꼽을 정도다.
읍성이라는 데도 해자가 없는 데 천지다.
왜 해자가 없는가?
몇 가지 측면에서 살펴야 하는데, 가장 주된 이유는 저주받은 한반도 기상 지리 조건 때문이다.
이 저주받은 한반도는 해자를 만들 만한 땅도 없고, 그나마 있는 땅이라는 것도 걸핏하면 물이 넘쳐 물난리가 나는 까닭에 섣부른 해자 만들기는 전체가 수몰하는 위기로 몰고간다.
해자는 물론 그것이 들어섬을 방해하는 조건들을 무력화하는 방향들이 강구되기는 하지만 기본에서는 평지에 들어서야 한다.
하지만 단군할아버지는 후손들한테 그런 쓸 만한 평지성을 만들 만한 땅을 물려주지 않으셨다.
있어야 면장을 하지?
뭐 한국고고학을 보면 평지성 혹은 그 비스무리한 성채만 발굴하기만 하면, 해자 찾아 삼만리 오매불망하면서 그 성벽 밖을 죽죽 째서 그 흔적을 확인하지만,
미안하나 그렇게 해서 찾았다는 해자 중에 진짜 해자라 할 만한 게 도대체 몇 군데나 있는지 모를 정도로 그 존재 자체가 나는 지극히 회의적이다.
무슨 해자?
성벽은 그 자체 언덕이라 그 안팤을 따라 자연 도랑이 형성되는 일을 많은데, 그 자연도랑이 실은 대부분이다. 이런 도랑 비스무리한 것이 무슨 해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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