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나는 다음과 같이 썼다.
21세기 대한민국 농작물 절반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건너왔다.
마늘 빼곤 모조리 아메리카산이다.
실크로드?
까고 있네
아메리칸 로드 아냐?
한데 이건 왜 팽개쳐?
사기를 못치니깐 그렇지 않겠는가?
고향 올 때마다 물끄러미 논밭을 바라보며 저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콜럼버스에 의한 신대륙 발견 이래 아메리카 대륙과 구대륙이 교류한 양상을 간단히 저리 정리했다.
바닐라, 완두콩, 옥수수 강냉이, 토마토, 감자, 땅콩, 고추, 파인애플, 고구마, 칠면조, 담배, 호박이 모조리 구대륙으로 건너왔다.
저 구대륙을 밟은 작물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선(하긴 요샌 전부라 해야겠다) 동아시아로 침투해 지금 내 고향 들녘에도 저 아메리카 대륙산 농산물을 뽑아버리면 논밭 3분지2가 날아간다.
고래하는 우리 전통 작물이라 해 봐야 파 마늘 벼 보리 정도만 남는다.
나락 농사는 일찌감치 퇴출됐으니 온통 내 고향 논밭은 아메리카 대륙 잔치다.
그렇다면 저래서 행복해졌을까?
아니 더 배불러졌을까?
아니라는데 아이러니가 있다.
감자는 콜럼버스 이전 유럽에서는 몰랐다.
그것이 들어와 아일랜드의 경우 순식간에 주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19세기 중반 그 감자가 시들음병에 걸려 전 국토가 아작이 났다.
당시 아일랜드 인구 절반이 굶어죽었다.
살고자 버둥한 사람들은 신대륙을 향해 배를 타고 줄을 지어 떠났으니, 지금 미국사회 한 켠을 장식하는 o' 계열 성씨를 쓰는 사람 거의 전부가 아일랜드 저 피난민 출신이다.
지금 우리 동네에는 담배 재배 농가가 없지만 어릴 때만 해도 우리집을 제외한 모든 집이 담배농사를 지었다.
그래서 삶이 윤택해졌을까?
아니었다.
그래도 계속 가난했다.
감자 고구마가 들어오고 호박이 들어왔으나, 그것이 있다 해서 삶이 윤택해진 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찢어지게 가난했다.
이 역설을 도대체 어찌 설명해야 할 것인가?
나는 항상 이 의문이 있다.
새로운 작물이 들어오고 그 작물 수확이 있으면 삶이 윤택해져야 하는데 결코 그런 일은 없었다.
이 찢어지게 가난한 농촌을 잘 살게 한 것은 새마을운동인가? 산업화인가? 도시화인가?
그 동인을 무시하지는 못하겠지만, 농촌이 살아난 것은, 그나마 숨통이라도 트게 된 것은 저것이 빌미 중 하나가 되기는 했겠지만, 암튼 저와 같은 것이 있어 이농 탈농이 줄을 잇고서였다.
그것이 한창일 때 우리 동네만 해도 저 동네 어떤 형이, 그 다음날엔 아랫마을 어떤 누나가 도망을 쳤다 했다.
그런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날아들었다.
구미로 나가고 울산으로 가고 창원 공단으로 간 친구들 언니 형들이 친구들과 동생들을 불러냈다.
그렇게 해서 하나둘 농촌을 떠났고, 그런 세월이 십년이 흐르고 이십년이 흐르니 농촌엔 노인네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농촌이 살아난 것은 이 찢어지게 가난하면서 사람이 바글바글한 그 동네가 핵가족으로 해체하면서였다.
한 집안 식구가 열 명이 넘는 시절에는 감자가 들어오건, 담배 농사를 짓건 아무리 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었다.
젊은이들이 떠나고 나니 비로소 농촌이 숨통을 텄다.
그 숨통을 튼 농촌이 다시 이제는 인구절벽이라고, 공동체 자체가 무너진다고 아우성이다.
그렇다고 그 옛날로 돌아간다?
그건 망하는 지름길이다.
그렇다고 다시 한 집안 식구가 열 명이 되는 시대? 그 시절로 돌아가자는 말은 아니겠거니와, 도대체 이를 어찌 봐야 하는지 갈수록 모르겠다.
그러면서 ppt를 생각한다.
분명 편하자고 생긴 것이 ppt인데, 왜 그것이 생기고 나니 글쓰고 발표하는 고통이 두 배 세 배로 늘었는가?
온라인시대가 좋다 해서, 해 보니 좋은 듯해서 온라인 사회로 달렸는데, 유심칩을 갈아야 한다느니 뭘 깔아야 한다느니 난리버거지지라, 도대체 이 시대를 어찌 살아가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이러다 액티브 X시대로 다시 돌아가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분명 혁명이라 했는데, 그 혁명이 혁명이 아니었는지 물어볼 참이다.
감자는 식생활 혁명이었으나 그것이 알고 보니 재앙이었다.
감자가 아니었던들 저 아일랜드 인구 절반이 굶어죽을 일은 없었지 않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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