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une 3, 2016 at 9:34 AM '《敎의 주체와 왕권의 문제》'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을 주된 기반으로 삼아 그것을 보강한다.
敎(교)란 무엇인가? 가르친다는 뜻이요, 이에서 비롯되어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행정명령, 법원 결정문 따위를 敎라고 했다. 이 경우 敎는 가르친다 라기 보다는 명령한다에 가깝다. 그래서 敎가 지닌 여러 가지 의미 중에는 사역과 강제를 의미하는 使, 혹은 令, 혹은 命의 뜻이 내포하는 일이 많다.
이것이 정치 행정무대로 전용해서는 왕이 내리는 명령 전반을 敎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북한산 비봉碑峰 신라 진흥왕순수비...이 비문에서도 순수巡狩하는 주체로 진흥왕만이 아니라 신하들을 같이 들었다. 순수를 왕만이 아니라 신하들도 같이 한 것으로 표현했다 해서, 진흥왕 시대에도 왕권이 확입되지 않았다고 해야 하겠는가?
이러한 敎를 내리는 주체가 누구냐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신라사, 특히 중고기 신라사에서는 이 시대 신라에 왕권王權이 확립되었네 아니네 하는 문제가 빈발하고, 이를 주제로 하는 논문만 수십편 수백편에 이른다.
이런 논쟁들을 볼 때마다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보다, 나는 이걸로 왕권 성립 여부를 논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대담무쌍하게만 보인다. 모든 敎를 王이 내려야만 그 사회에 왕권이 성립되었다는 징표로 본다는 자체가 맹랑하기 짝이 없는 까닭이다.
근자에 발견된 501년 무렵 건립 추정인 포항 중성리비를 필두로 영일 냉수리비, 울진 봉평비 따위에서는 주로 이해관계를 다투는 쟁송 문제와 관련한 신라 조정의 판결문, 혹은 사회 전반 특정 사안을 규율하기 위한 법령 포고문을 담았거니와, 조정에서 이를 심판한 결정문을 敎라는 이름으로써 판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북한산 비봉 신라 진흥왕순수비
한데 그 판시 주체를 보면 당시 신라왕이 아니라, 그 왕을 포함한 관료집단, 혹은 특정한 지위에 있던 어떤 신하로 표현되곤 한다. 간단히 말해 이 시대 현존하는 신라 문서, 특히 법률 행정 문건을 보면
(무슨 왕 + 무슨 갈문왕 + 어떤 신하들)敎....
라는 형식으로 표현했으니, 이를 주목하는 신라사 연구자들이 요란을 떨기를
"봐라. 신라왕은 중고기만 해도 단독으로 敎를 내리지 못하고, 다른 갈문왕이나 신하들과 함께 敎를 내리니 그 지위와 권력이 신하들에 견주어 초월적이 못했다."
고 방정을 뜬다. 이에서 비롯되어 요즘에는 부체제설이라는 실로 요망한 이론은 지증왕 당시에는 신라에 지증왕 뿐만 아니라 그외에도 6명의 왕이 동시에 병렬적으로 더 존재했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서슴지 않기에 이른다.
敎를 내리는 주체가 누구냐 하는 데서 그 시대 왕권이 성립되었느니, 않았느니 하는 발상 자체가 도대체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는지 나로서는 기이하기 짝이 없다.
북한산 비봉 신라 진흥왕순수비
이에서 주목할 것은 이들이 말하는 왕권은 실은 왕권이 아니라 전제주의자로서의 왕이라는 점이다. 요컨대 이들은 저러한 전제 자체가 king과 kingship 자체를 혼동했으니, 이는 똥과 된장을 헷갈린 일과 진배없다.
더 간단히 말한다. 敎를 내리는 주체가 王 외에도 여럿이 있다 해서, 그 사회가 왕권이 성립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전연 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빈발하는가? king과 kingship를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왕이 단독으로 敎를 내려야 그 시대 왕권이 확립되었다는 이 밑도끝도 없는 발상은 도대체 어디에서 뿌리를 뽑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이 시대 敎를 내리는 주체가 왜 집합명사인가?
이런 敎가 등장하는 문건은 거의 예외없이 쟁송 관련 문건이다. 간단히 말해 재판 판결문이다. 이런 판결에 이르기까지에는 실무자에서 중간급 간부, 그리고 부서 장관, 그리고 그 위로 갈문왕과 왕에 이르는 '결재라인'이 있기 마련이다.
敎의 주체로 등장하는 사람들은 예외없이 이 결재라인에 위치하는 사람들이다.
북한산 비봉 신라 진흥왕순수비
왕권이 확립되어야 한다는 지표를 오직 왕 혼자서 제 멋대로 해야한다는 발상에 충실한 사람들은 다른 놈들 다 제끼고 왕 혼자서 敎를 발표해야 그 시대 왕권이 확립된 징표로 본다. 왕이 얼마나 등신 같았으면 저 혼자 敎도 못내리고 신하들과 함께 내리냐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신라사회는 결코 왕 단독으로 敎의 주체로 내세우지 않았다. 결재 라인에 있는 모든 자를 敎의 주체로 표시했다. 이런 성향은 특히나 쟁송 문서에서 두드러진다.
왜 이러했는가?
이를 묻지 않으니 저 허무맹랑한 설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쟁송은 첨예한 이해 다툼이다. 그 결과에 따라 한쪽은 모든 것을 얻지만 다른 한쪽은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이런 첨예한 판결을 내리 주체로 王 혼자서 등장한다는 것은 왕을 그만한 반발의 위험에 노출한다는 뜻이다.
왕 혼자서 내린 결정은 그 모든 책임이 왕 한 사람에게 귀결하기 마련이다.
傳 진평왕릉
어찌하여 왕이 이런 모든 책임을 혼자서 져야 하는가?
敎의 주체가 집합명사가 되는 것은 왕에게 집중하는 책임을 회피하는 전형의 방법이다.
반면 국가 유공자를 포상하는 따위의 일은 오로지 왕 혼자서 해야 한다. 왜? 백성에게 시혜를 베푸는 일은 왕이 독점해야 왕이 빛나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런 체제가 가동하는 시스템 전반을 일컬어 왕권이라 한다.
좋은 일은 왕 혼자서 해야 하며, 나쁜 일, 피를 묻히는 일은 책임을 분산해 되도록이면 실무진으로 전가해야 한다.
경주 선도산 기슭 서악동고분군
왕이 모든 敎를 독점하는 일. 그것은 칼을 부르는 행위다.
신하들더러 날 죽여주십시오 하는 호출에 다름 아니다.
덧붙여, 설혹 이런 책임 회피 혹은 분산이 아니라 해도, 어찌하여 모든 敎를 왕 혼자만 독점해야 그 사회가 비로소 왕권을 성립한 국가로 본단 말인가?
敎하는 주체가 다양하다는 것은 왕의 권력이 미약하다는 증거가 결코 아니다. 이럴 때는 왕의 이름으로 하고, 저럴 때는 왕과 갈문과 다른 신료들이 하고, 또 다른 때는 어떤 직위 직책에 있는 신료가 하도록 하는 그런 그물망 같은 시스템을 조율하는 무언의 힘이 바로 왕권이다.
경주 선도산 기슭 서악동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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