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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BTS를 모른 언론사 문화부장의 토로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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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2년에서 조금 모자란 풍찬노숙 해직 생활을 나는 2017년 7월 12일, 대법원 확정 판결을 통해 끝냈다.

다만, 최종 판결이 급작스레 나는 바람에 이런저런 사정으로 문서상 공식 복직은 그해 8월 1일자였다. 

하지만 나는 당시 자유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유럽 각지를 떠돌 때라,

8월 1일 이후 같은달 20일까지 휴직 상태로, 그것을 마치고 그달 21일 출근하니, 그때는 여전히 박근혜 적폐정권 시대라,

적폐경영진도 비록 빈껍데기에 지나지 않기는 했지만, 여전히 월급을 받아쳐먹을 때라, 이런 놈들 특징이 지들이 불리한 때만이 원칙을 고수하는지라,

뭐 본래 있던 부서로 복귀가 원칙이래나 뭐래나 하는 기준에 따라 나는 해직 직전 근무부서인 전국부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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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이듬해 2018년 4월 16일, 문화부장으로 인사발령을 받아 2019년 6월 1일 현재 대략 1년 1개월 반가량 같은 자리를 지킨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26년에 이르는 기자 생활 대부분을 문화부에서 했거니와, 만 17년 동안 계속한 문화부 기자생활은 줄곧 문화재 업무를 전담했다. 

문화재와 더불어 학술 역시 이와 거의 맞먹는 기간이긴 했지만, 중간에 손을 놓기도 했고, 나아가 초창기에는 문화체육관광부를 대략 2년 넘게 전담하기도 했으니,

이때 연을 맺은 이들로 김장실 전 문체 차관과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 박양우 현 문체부 장관 등등이 있으니, 이 무렵 이들은 국장급이었다. 

런던에 모인 ARMY


정확한 시기는 여타 검증을 해야겠지만, 김대중 정부 시절인 당시 문화부 장관은 여성배려 케이스라 해서 민주당 현역 의원인 신낙균씨였고, 내가 문화부를 맡을 당시 대변인은 김장실 차관이었다.

이후 대변인이 차례로 박양우, 그리고 언뜻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다른 분을 거쳐 유진룡 장관이 맡았는데, 그 무렵 나는 문체부를 놓았던 듯하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자 한 까닭은 이 얘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었는데, 나온 김에 그리 되어 버렸으니, 이만하기로 하고,

아무튼 그 지랄맞다는 문화재와 학술 분야를 전담하면서, 나는 여타 관심 분야를 현격히 줄여갔으니, 나이를 점점 먹어간 까닭도 있겠거니와,

당시까지만 해도 이른바 길보드라 해서, 그런대로 무단복제한 리어커상에서 최신 유행곡 모음집 테이프를 사서는 대략 어떤 노래가 유행인지는 알던 시대였지만, 그 시대도 이내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런 내가 물경 20년이 지나, 기자로서는 아주 드물게 이른바 문화 전문기자라 해도, 학술이나 문화재 말고는 아는 것도 없는 놈이 어느날 느닷없이 문화부장이 되어 나타났으니,

해직 이후 대략 3년에 달하는 기간 동안 문화는 또 변해서, 무엇보다 대중문화 비중이 압도적으로 커진 상황이었다.

특히 한류 바람이 더욱 거세졌으니, 지금도 사정이 크게 나아지진 아니했지만, 대중문화 중에서도 특히 대중가요는 내가 아는 바가 전연 없었다. 

트와이스


1년 남짓 흐른 지금, 내가 틈만 나면 방탄소년단이 대표하는 한류 바람을 이야기하지만, 이미 여러번 고백한 것으로 알거니와, 문화부장으로 발령받을 당시, 나는 방탄소년단이 무슨 개뼉다귄 줄 알았더랬다.

난 방탄소년단이라는 존재를 처음으로 알았다. 물론 그런 이름이 있다는 말은 어딘가 스쳐가는 식으로 듣기는 했지만, 그네들이 그토록 세계를 호령하는 보이밴드인 줄은 미쳐 몰랐다. 

BTS가 그랬으니, 나머지 트와이스니 레드벨벳이니 블랙핑크는 말해서 무엇하랴? 지금도 NCT 127인가 하는 아해들이 인기인 모양인데 이 친구들은 전연 모른다. 


레드벨벳


세계정복을 한 BTS가 다시 그 권력을 공고화하고자 이른바 월드 스타디움 투어에 나선 지금, 그 일환으로 런던 심장부 웸블리에 입성한 지금, 나는 BTS를 통해 한류를 논하는 우스꽝스런 모습을 보인다.

암것도 모르는 놈이 지껄이는 소리일 수밖에 없으니, 내가 하는 말이 무에 신뢰를 주리오? 

내친 김에 꼭 1년 전인 2018년 6월 1일 페이스북에 내가 올린 비스무리한 글이 있어, 그것을 재방한다.

지금 쓴다면 또 내용과 생각이 왕청나게 바뀌었겠지만, 대중가요라고는 전연 모르던 놈이 한 때 지껄이던 소리라 생각해 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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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선풍은 해외에서 이를 체험한 많은 이가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경향, 혹은 이를 둘러싼 보도를 보면, 이것이 단순히 국내용 사건이 아님은 분명하거니와, 그에 따라 그들의 인기 비결이 무엇인지를 소위 전문가를 불러다가 짚는 시도가 더러 보인다.

웸블리 공연 앞둔 런던

해외 팝칼럼니스트라 할까 하는 그 전문가들 분석에서 한결같이 보이는 k-pop을 향한 평가가 있으니,

이들은 기존 k-pop의 일률성 획일성을 지적한다는 점이 내 눈길을 유난히 끈다.

하긴 이건 내가 외부에서 바라보는 처지가 아니라, 내부에서 바라보는 처지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거니와, 그들 역시 평하기를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k-pop라면 연상케 되는 그 획일성을 벗어났다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한다.

무슨 차이일까? 내가 여전히 방탄이가 생소한 가운데 그것을 논할 처지가 아니로대, 그럼에도 기존 케이팝에 견주어 방탄이의 저항성을 주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웸블리

이들의 총감독이라 할 방시혁 인터뷰를 보니, 방이 이들을 키우는 전략은 좀 무서운 데가 있는데, 개중 하나가 이들을 싱어송 롸이터로 키워냈다는 점이 있다. 말하자면 저들은 하나하나가 조용필이요 존 레넌이며 폴 매카트니인 셈이다.

나아가 저들은 젊어서 그런지, 혹은 시대 흐름을 반영함인지 몰라도 하나하나가 마이클 잭슨이라, 나는 어떤 면에서 저들을 세븐 잭슨즈라 불러도 손색이 없지 않나 한다.

방탄이를 원심분리한 기존 k-pop은 획일성이 어디에서 오는가?

내가 볼 적에는 그들은 퍼핏puppet이라는 느낌을 지울 길 없다. 

노래 만드는 사람 따로 있고, 안무하는 사람 따로 있고, 그 뒤에 기획사가 있고, 이런 틈바구니에서 그 가수들은 틀에 박힌 자기 역할을 수행하는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기존 k-pop은 frame에 주물해서 찍어내는 같은 규격 반도체 칩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방탄소년단 성공을 한국문화의 저력, 한국문화콘텐츠의 저력으로 설명하려는 시도 역시 강고하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이를 추진한 주로 정부쪽 관련 인사들 논리이거니와, 방탄의 성공의 정부의 성공으로 설명하려는 욕망에서 비롯한다.

BTS 침공 런던

뭐 그 이유야 안봐도 야동이니, 그래야 관련 예산을 확보하고 증대하는 힘이 되는 까닭이다.

물론 기존 k-pop의 밑거름, 혹은 그 실패, 혹은 그 성공이 방탄이의 이번 괄목에 적지 않은 영향을 행사했음은 부인할 수 없으리라 본다.

내 기억에 원더걸스 노바디만 해도, 그 영어본이 따로 있다. 영어본을 만든 이유야, 소위 미국시장 혹은 그것이 상징하는 세계시장 공략을 위한 것이었지만, 그에 견주어 강남스타일은 어중간에 영여 몇 마디 들었기는 하지만, 골자는 한국어로 승부를 걸었으니, 이런 시도 혹은 기존 성공들이 한국어라는 외국어를 향한 노래의 이질감을 없애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수행했고, 그것이 방탄이의 노래들 성공 밑거름이 되었다고 나는 보고 싶다.

 

아미

그런 점에서 저들의 괄목상대함이 한국문화 콘텐츠의 저력이라는 말이 꼭 헛다리를 짚었다고만 할 수 없다.

음악을 세계공통언어라 하거니와, 대중음악이 기존 모국어를 간직하면서, 그것을 전연 알리 없는 시장에 통용할 제1의 관건은 가사에서 그것을 분리하는 일이거니와, 이 분리의 제일 관건은 흥겨움이라, 그런 점에서 방탄이와 방시혁이 시도한 그것이 목적한 것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거니와, 저에서 필요한 것은 fake love라는 장단 혹은 맞짱구이며, 기타는 그네들이 내세우는 칼 군무인지 뭔지하는데 침몰해 버렸으니, 이를 통해 가사의 격리가 주는 이질을 극복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뭐, 얼치기의 긁적임이다.

아미 소녀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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