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미답지 천지이나, 문득문득 가본 데라도 체계화의 욕망이 아직은 있다.
남들처럼 여행후기니 해서, 먹방 소개하고 교통편 어쩌니 하는 일은 나랑 천성이 맞지 않는다. 그렇다 해서 내가 저들이 블로그 후기에 써놓은 저런 글들에 도움이 받지 않는 건 아니라,
외려 반대로 절대적 도움을 받기도 하니, 나 역시 그런 데다가 한 숟가락 얹어야 그 신세에 한 줌 보태는 일이 아닌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내 적성과도 맞지도 않아 내가 할 일은 아닌 듯하다.
체계화란 무엇인가?
하지만 그 체계화가 어디 쉬운가?
이번 이태리 답사에서 나는 키츠와 셸리를 만났고, 그 감흥이랄까 하는 것들을 한 때는 영문학도를 꿈꾸었던 사람으로서 자못 비장하게 썼지만,
그 팩트 자체는 전연 자신이 없어, 하다못해 영문학 개론서라도 다시금 들춰봐야 그런대로 신빙을 갖추는 일이 된다.
그렇다고 현장에서 만나는 몇몇 안내문 버무려, 뇌까리는 일도 천성에도 맞지 않아, 말을 하되 내 목소리로만 하고 싶은 그런 욕망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그런 하나를 위해서도 이른바 논문 한 편 쓰는 열정과 노력이 필요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키츠를 읽어야 하고, 그의 엔디미온쯤은 그런대로 긁적거려야 하며, 로만티시즘을 둘러싼 논쟁 정도는 꿰뚫어야 하며,
나아가 그 로만티시즘이 영국만의 현상이 아니요, 유럽 전반을 휩쓴 전염병과도 같아 동시대 불란서와 독일 문단도 봐야 하며, 그 일환으로 베르테르라도 다시금 들춰야 하는 일이다.
이럴 적마다, 그 시절 공부라도 좀 해둘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오지만 언제까지나 회한에 젖어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것저것 과거를 들추다, 런던박물관에서 만난 rose theatre 모형을 마주하고는 만감이 교차한다. 이곳에서 말로와 셰익스피어 연극이 무대에 올랐다.
셰익스피어와 같은 해에 태어나 그보다 더 일찍 유명해졌다가 요절한 천재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를 찾는데, 이 복잡 서재 어디서 그를 호명한단 말인가?
차기 행선지로 브리튼과 아일랜드를 정하고 나니, 점점 더 저쪽이 땡긴다.
나름으로는 당분간 나 자신을 '예이츠 주간'으로 묶어두려 한다.
박완서가 그랬다.
가지 않은 길은 언제나 아름답다고... (2019.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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