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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강원관찰사 허백당虛白堂 성현成俔이 증언하는 강릉 사람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2.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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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기 좋아하는 강릉 사람들. 사진은 강릉단오제 by 유형재


강릉·원주 풍속기〔記江陵原州風俗〕
성현成俔, 《허백당문집虛白堂集》 제3권 / 기記

대체로 사람의 상정常情은 척박한 땅에 살면 부지런해지고 비옥한 토양에 거처하면 안일해지기 마련이다. 위魏 풍속은 검소하고 인색하며 연燕·조趙에는 굳세고 과감한 선비가 많았으니 그 땅이 변새邊塞와 연접해 산이 높고 물살이 빠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곳에 사는 사람은 성정이 모두 참을성이 강하며 질박하고 정직하여 근본에 힘쓰고 말단을 좇지 않는다.

반면 정鄭과 위衛는 음탕하고 제齊 풍속은 사치하고 큰소리로 남을 속이며 강동江東 지역 사람들은 나약하여 떨쳐 일어나 분발하려는 의지가 없으니, 그 산세가 완만하고 물이 느릿느릿 흐르며 거주지가 해안에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성정이 태만하고 소극적이며 본업에 힘쓰지 않고 말리末利에 현혹되는 자가 매우 많다. 이는 모두 거주하는 땅의 성질에 따라 사람 성정이 달라진 것이다.

관동關東 대읍으로는 강릉과 원주를 꼽을 수 있는데, 두 고을 간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은데도 풍속은 크게 차이가 난다.

원주 사람들은 태어나는 날부터 그 부모가 자식 명의로 먼저 곡식 한 말을 떼어 주어 재곡財穀 밑천으로 삼아 해마다 이자를 받아 재산을 불려 나가는데 하찮은 왕겨 한 톨도 만금처럼 소중하게 여긴다. 새벽부터 밭고랑에 서서 쟁기질을 재촉하고 김매기를 서두르며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하다가 날이 컴컴해져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웃 사람들과 서로 모여 술을 마시지도 않는다.

그들은 사윗감을 고를 때조차도 “아무개는 그물을 만들어 물고기를 잡았으니 안 된다”라 하거나 “아무개는 산에 올라가서 꿩 사냥을 했으니 안 된다”라 한다. 반드시 근검하고 인색한 사람을 골라 사위로 맞아들인다. 한 번이라도 방탕한 행동을 하면 향당 구성원으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고을 안에 높은 담장을 친 큰 집들이 많고 몹시 가난한 사람은 없다.

강릉은 그렇지 않다. 강보에서 놓여 나자마자 먼저 즐겁게 노는 일부터 일삼아 곱고 아름다운 의복을 해 입고서 사치와 화려함으로 서로 뽐낸다. 집집마다 과녁을 설치하고 부잣집에서 곡식을 빌려 잔치하는 비용을 마련한다. 술잔을 잡고 술통을 가지고 다니며 술에 취하지 않는 날이 없다. 혹 이 때문에 고을의 풍속에 월조평月朝評이 있기도 하다.

비록 농사철을 만나더라도 농사일에 힘쓰지 않는다.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나가서는 해가 기울면 집으로 돌아오는데 ‘모기와 깔따구가 살을 깨물어 더 이상 못하겠다’라 하거나 ‘불볕더위가 등에 내리쬐어 견디지 못하겠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므로 양가良家와 세족世族이 고을에 널려 있어도 살림이 넉넉한 사람은 없다.
내가 언젠가 그 이유를 찾아보았으나 답을 얻지 못하였다. 이제 그 지역에 가 보고 나서야 비로소 산천 기운이 사람 성정을 바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주는 산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는 까닭에 전답이 척박하고 메말라 곡식이 잘 자라지 않으며, 한 번 유람해 볼 만한 기이하고 빼어난 산과 물도 없다.

이에 비해 강릉은 동해 근처에 자리를 잡아 전답이 질펀하게 널려 있고 송정松亭과 경포鏡浦 같은 곳은 신선이 노닐던 곳으로 뛰어난 경관과 이름난 고적이 천하 으뜸이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척박한 땅에 살면 부지런해지고 비옥한 토양에 거처하면 안일해짐이 사람 상정이다.

그러나 인성은 본래 악하지 않아서 착한 모습으로 변할 수 없는 사람은 없으며, 풍속은 좋고 나쁨이 없어 좋은 풍속으로 변할 수 없는 풍속은 없다. 진실로 위에 있는 사람이 충서忠恕의 가르침을 행하여 몸소 백성들을 이끌어 좋게 변화한다면, 비록 만맥蠻貊과 같은 먼 지역이라 하더라도 장차 풍속이 변하여 이에 따라 교화할 것인데, 하물며 원주의 인색함과 강릉의 사치함 정도야 무슨 문제될 것이 있겠는가.

놀기 좋아하는 강릉 사람들. 사진은 강릉단오제 by 유형재



[주-D001] 강릉·원주 풍속기 : 성현이 강원도 관찰사로 재직할 때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지은 글이다. 자연 환경이 사람의 성격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나라에서 교화를 잘 펴면 그 풍속의 단점을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특히 강릉과 원주의 자연 경관과 인성을 연결하여 서로 대조적으로 논증한 것이 돋보인다. 이 글은 성현이 강원도 관찰사로 제수된 1483년(성종14) 11월 이후에 지어진 것으로 추단된다. 《허백당집》 문집 권3~5에 수록된 33편의 작품은 모두 기記로 분류되어 있다. 기記란 본래 어떤 사태와 관련하여 관련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인데 부차적인 의론이나 권계의 성격이 강조된 작품이 많다. 그 성격으로 볼 때 30편의 작품은 모두 누정기樓亭記나 관사의 중수기重修記 등 건물의 영건營建에 관련된 것이고 실제로 성현이 써 준 기문을 해당 누정이나 관사에 게시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일종의 풍속기風俗記나 문견기聞見記로 분류할 수 있어, 글의 성격상 다른 기문과 차이가 있어 번역에도 이를 반영하였다. 바로 뒤에 나오는 〈양양부의 훼철한 정자에 대한 견문기〔襄陽府毁亭記〕〉도 같은 성격의 글이다. 권4에 수록된 〈왕명을 받들어, 어승마를 그린 그림에 대하여 지은 화기〔奉敎製御乘畫馬圖〕〉는 그림에 써넣는 화기畫記에 속한다.

[주-D002] 떨쳐 …… 없으니 : 대본에는 ‘無□□之志’로 되어 있는데, 규장각본에 근거하여 ‘奮厲’ 2자를 보충하여 번역하였다.

[주-D003] 재곡(財穀) : 재물과 곡식을 포괄하여 말한 것이다. 여기서는 단순히 재산의 의미만이 아니라 이자 놀이를 할 때의 원금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주-D004] 그 부모가 …… 나가는데 : 원문은 ‘其父母先給斗粟, 爲財穀之本, 年年取息.’이다. 이 구절은 오늘날 재리財利에 밝은 부모가 자식의 명의로 재산을 증식해 주는 것과 같다.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갓난아이에게 곡식을 주고 이자를 받는 내용이 되므로 문맥을 고려하여 사리에 맞게 의역하였다.

[주-D005] 월조평(月朝評) : 인물을 품평하는 것을 말하는데, 월단평月旦評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월조와 월단은 월초月初를 의미한다. 한漢나라 때 허소許劭가 향당의 인물을 논평하기를 좋아해서 매월 초하루가 되면 인물을 거듭 품평하였으므로 여남汝南 사람들이 이를 ‘월단평’이라고 하였다. 《後漢書 卷68 許劭列傳》

[주-D006] 송정(松亭)과 …… 곳 : 송정은 경포대 동쪽에 있었던 한송정寒松亭을 말한다. 신선은 신라 시대에 있었다는 네 명의 국선國仙을 말하는데, 영랑永郞·술랑述郞·안상安詳·남석행南石行을 이른다. 이들은 경포대와 한송정에서 낭도들을 이끌고 놀았는데 그에 관한 유적으로는 사선비四仙碑, 사선의 이름을 적은 석각石刻, 한송정 옆에서 차를 끓이는 데 필요한 도구인 석조石竈, 석지石池, 이석정二石井 등이 있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이곡李穀의 《가정집稼亭集》 권5 〈동유기東遊記〉와 김창협金昌協의 《농암집農巖集》 권23 〈동유기東遊記〉에 보인다.

[주-D007] 원주는 …… 으뜸이다 : 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 팔도의 산맥수세山脈水勢, 풍기민속風氣民俗, 재부財賦의 산출, 토양의 비척肥瘠 등에 대해 상세히 기술한 이중환李重煥의 《택리지擇里志》 〈팔도총론八道總論 강원도〉를 살펴보면, 강릉에 대해서는 “산과 바다에 경치가 뛰어난 곳이 많다. 골짜기는 깊고 수석은 깨끗한데 간혹 선령仙靈의 이적異蹟이 전해 오기도 한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노는 것을 중히 여긴다. 부로들은 기악妓樂과 주육酒肉을 싣고 호수와 산에서 질탕하게 노는데 이를 대사大事로 여긴다. 자제들도 이를 본받아 학문에 힘쓰는 자가 적다.”라고 하여 성현의 기술과 상통하는 언급을 하였다. 이에 반해 원주에 대해서는 “산골짜기에 군데군데 들판이 펼쳐져 있는데 명수明秀하여 그다지 험하거나 막히지는 않았다. 경기와 영남 사이에 끼어 동해의 어염, 인삼, 관곽棺槨과 궁전에 사용하는 목재를 수송하느라 한 도의 도회가 되었다. 산협과 가까워 유사시에는 피하여 숨어 살기가 쉽고, 서울과 가까워 무사할 때는 벼슬길에 나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한양의 사대부들이 이곳에서 살기를 좋아한다.”라고 하여, 원주가 번성하게 된 요인으로 물자 수송의 편리함과 서울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을 들었다.

[주-D008] 풍속이 변하여 : 원문은 ‘오변於變’으로, 《서경》 〈우서虞書 요전堯典〉의 “만방의 제후국들을 화목하게 하였는데 그 백성들이 아, 변하여 화합하였다.〔協和萬邦, 黎民於變時雍.〕”라는 대목에 나오는 말이다. 주희의 주에 ‘오於’는 탄미사歎美辭라고 하였고 ‘변變’은 악이 변하여 선으로 된 것이라고 하였다.

ⓒ 한국고전번역원 | 김종태 (역) | 2015


*** 번역은 편집자가 인용하면서 매끄럽게 하는 수준에서 조사를 삭제하는 수준에서 손을 댔다.

내가 이 글을 새삼 인용하는 까닭은 저 모습이 신라시대 동해안 가 사람들 습속이라 단정할 순 없겠지만, 줄곧 이곳에서 신라시대 동해안을 살피는 데 참고 자료가 되지 않을까 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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