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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화외化外로서의 여진과 탐라, 고려가 발명한 야만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2.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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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rmanic warriors" as depicted in Philipp Clüver's Germania Antiqua (1616)


고려사절요 제1권 태조 신성대왕 (太祖神聖大王) 을유 8년(925), 후당 동광 3년ㆍ거란 천찬 4년


○ 11월에 탐라(耽羅)에서 지방의 산물을 바쳤다.


고려사절요 제1권 태조 신성대왕 (太祖神聖大王) 신묘 14년(931), 후당 장흥 2년ㆍ거란 천현 6년


○ 이해에 안북부(安北府)와 강덕진(剛德鎭)을 설치하고 원윤(元尹) 평환(平喚)을 진두(鎭頭)로 삼았다. 왕이 유사에게 이르기를, “북번(北蕃) 사람은 얼굴은 사람꼴이지만 마음은 짐승과 같아서, 굶주리면 오고 배부르면 가버리며 이익을 보면 부끄러움도 잊는다. 지금은 비록 우리에게 복종하여 섬기고 있지마는, 따르거나 배반함이 일정치 않을 것이니 마땅히 지나가는 주ㆍ진에는 관사(館舍)를 성 밖에 지어서 그들을 접대하라." 하였다.


고려사절요 제4권 정종 용혜대왕(靖宗容惠大王) 계미 9년(1043), 송 경력 3년ㆍ거란 중희 12년


○ 동여진 장군 개로(開老) 등 40명이 와서 말을 바쳤다.
○ 여름 4월에 동북로 병마사가 아뢰기를, “여진 유원장군 사이라(沙伊羅)가 수륙의 적수(賊首) 나불(羅弗) 등 4백 94명을 꾀어 데리고 화주관(和州館)에 와서 조회하기를 청한다." 하였다. 유사가 논의해 아뢰기를, “이들은 얼굴은 사람이나 마음은 짐승이니, 병마사를 시켜 그 인원 수를 참작해 감하여 여러 차례로 나누어 조정에 오게 하소서." 하니, 따랐다.



*** 우산국도 추가해야 한다.

Slaves in chains, relief found in Smyrna (present day İzmir, Turkey), 200 AD


***

화외化外란 무엇인가? 교화의 밖이라는 뜻이다.

고려는 저런 방식으로 그 직접 통치구역은 화내化內로 규정했으며, 직접 통치가 불가능하며 그래서 교화가 불가능한 지역으로 화외를 설정하고는 그들에 대해선 사대 조공 관계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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