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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 시대 신라의 국경선은 최소가 이것이다. 기존에 저 시대 신라 영역이라 표시된 지도는 다 오류다.
보통 이딴 식으로 그리곤 하는데, 왜 오류인가?
저 지도대로라면 진흥왕이 지들 국경선 끄터머리에 서서 여긴 우리 땅이라 표시한 셈이 되거니와, 어떤 미친 놈이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실제 같은 순수비인 북한산 비봉비 역시 신라 영역 복판이었다.
순수비는 아니지만, 그와 성격이 비슷한 창녕비도 그것을 중심으로 주변 일대를 모조리 신라가 장악하고서 그 복판에다가 세운 것이다.
한데 황초령비와 마운령비만큼은 지금의 휴전선 혹은 DMZ 같은 데다 적들을 바라보며 성대한 의식을 하면서 그 끝에다가 저걸 세웠다고? 어떤 놈이 저 따위 망발을 일삼는가?
마운령비 황초령비는 저것을 세운 지점 주변 넓은 땅이 신라 영역이었음을 표시한 것이다. 지금의 개마고원 일대, 그리고 동해안 변으로는 넉넉잡아 지금의 나진, 넓게는 두만강 유역까지가 신라의 직접 혹은 간접지배가 미친 구역이었다.
개마고원 절반은 신라 영향권이었다.
바로 저 개마고원에서 조달한 것이 바로 천마총 장니 바닥재 자작나무 껍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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