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은 요사遼史를 중심으로 귀납으로 살피면, 황제 소생 딸들한테서도 당연히 정비 소생이냐 혹은 첩실 소생이냐에 따른 신분 차별이 엄격하고, 나아가 그 자체 등급 역시 등락이 있다.
다만, 아쉽게도 이 공주 봉작제도에 대해서는 요사遼史 어디에서도 체계적인 논급 혹은 정리가 없어 모조리 사례 중심으로 살펴 그 작동원리를 추단하는 수밖에 없다.
위선 이 봉작 제도를 보면 공주는 철저히 현재의 황제를 기준으로 이뤄진다.
정비 소생은 당연히 자동으로 공주公主라 한다. 후궁 소생은 엄마 격에 따라 아래로부터 현주縣主와 군주郡主가 있고, 아예 봉작을 받지 못하는 딸도 있다.
공주냐 군주냐 현주냐 하는 봉작이 이뤄지는 시점은 모르겠다.
태어나서 곧바로 이뤄지는 것은 아닌 듯하다. 하긴 뭐 그때야 걸핏하면 얼나 때 죽었으니 말이다.
모든 공주는 본래적인 의미에서는 현재 황제의 딸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당연히 모든 황제의 딸이 공주가 아니다.
저에서 보듯이 그 엄마가 정비냐 첩실이냐에 따른 차별도 있고, 무엇보다 현재의 황제는 언젠가는 죽기 마련인 까닭이다.
아버지인 현재의 황제가 죽고 그 아들이 등극하면, 공주들은 현재의 황제한테는 고모가 된다. 이 고모가 된 공주들을 바로 공주 중에서도 큰 공주라 해서 장공주長公主라 한다.
애초 이 장공주가 중국 한족 역사에 등장할 때는 내 기억에 고모 중에서도 가장 큰 고모를 지칭하지 않았냐 하는데, 기억에 의존하는 까닭에 내 추단이 틀릴 수도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거란 역사에 작동하는 시스템을 보면, 장공주는 동시기에 여러 명이 존재한다. 고모라면 다 장공주라 칭한 듯하다.
한데 대장공주大長公主가 있다. 장공주 중에서도 대빵이라는 뜻으로 이는 견주건대 각간들 중에서도 우열을 가려 그 우두머리인 사람을 대각간이라 하고, 그런 대각간들 중에서도 더 큰 대각간을 태대각간(태대서발한)이라 칭한 신라 시스템과 아주 똑같다.
이 대장공주는 동시기에 복수가 존재하지는 않는 듯한 느낌을 받지만, 또 하나 가능성이 있는 것은 현재의 황제를 기준으로 고모할머니가 될 때 이때도 대장공주가 되지 않나 하는 심증도 있다. 이때라면 동시기 복수 존재도 가능하다.
현재의 황제 딸들을 그 어머니 신분에 따라 공주/군주/현주로 봉작이 나누는 시스템은 남자들의 세계를 투여한 데 지나지 않는다.
곧 공주는 그 남편인 부마(도위)가 제후국에 봉해지고, 군주의 경우는 당연히 군郡에 봉해지며, 현주의 경우는 당연히 남편이 현縣에 봉해진다. 간단히 쉽게 말하면 남편이 도지사냐 시장 군수냐 면장이냐 이장이냐에 따라 다르다.
나아가 군주 현주 또한 나중에 잦은 승급이 이뤄진다. 나중에는 공주로 승급하기도 하니, 이는 아무래도 남편이 어느 정도 출세하냐에 따라 다른 듯하고, 나아가 그 어머니가 황제의 굄을 어느 정도 받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듯하다.
이들 공주의 삶에서 큰 변화가 초래하는 시기가 결혼이다. 봉작은 결혼과 관계 없이 이뤄지기도 하면서 결혼하게 되면서도 이뤄지는데, 정비 소생인 공주는 흔히 무슨 國 공주라는 칭호가 붙기 시작한다.
거란은 지방 통치 시스템을 보면, 봉건제후제를 채택하는 듯이 보이지만, 그렇다 해서 우리한테 익숙한 그 봉건제는 아니어서, 강력한 중앙통제가 발동한다.
보통 봉건제라면 한 번 그 제후국왕으로 임명되면, 그 왕위가 그 자손으로 대대로 계승되고, 그 왕국 내에서는 그 제후왕이 상당한 자율권을 누리지만, 거란은 이것이 얼마나 잦은 폐해를 초래하는지를 본 까닭인지, 걸핏하면 봉국封國을 바꿔 버린다. 그런 때마다 공주 또한 봉작이 변해서 그 國 이름을 따라 바뀐다.
따라서 거란 역사에서 누가 무슨 國王으로 책봉되었느니 하지만, 그 왕국 내에서 그닥 큰 실권은 없고, 심지어는 타이틀뿐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강하게 받는다.
또 하나 앞서 지적했듯이 황제의 딸이라 해서 모두가 봉작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거란사를 읽으면서 대강이나마 추려낸 공주 봉작 시스템인데, 이를 보면 동시대 중국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직감한다.
거란은 야율아보기 시대에 느닷없이 제국으로 성장하면서 국가시스템을 갖추거니와,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제도를 동시대 중국, 특히 宋에서 채택하고, 아울러 생각보다 훨씬 더 치밀하게 선대 중국역사를 공부해서 그 제도를 완성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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