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 사용의 문제에 대해서 조금 더 부연해 본다.
필자는 지금까지 쓴 논문 대부분이 영문으로 되어 있어 한글 논문이 별로 없다.
이는 필자가 활동한 30-50대까지의 학술논문 출판 환경과도 관련이 있는데,
일단 국내에 묶이지 않고 국제적으로 관련 학자들과 교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시기에는 영문 논문 출판이 아니고서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10년 전만 해도 필자는 우리나라 국문학술지는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을 막론하고
영문화해야 한다는 주장의 강력한 옹호자였다.
그런데 요즘 시대가 바뀐다는 것을 절감하여 이 부분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필자의 최근 경험을 하나 이야기 해본다.
필자는 최근 이름을 대면 알 수 있는 일본 고고학 잡지 특집호를 하나 일본학자와 함께 편집하고 있는데,
해당 특집호에 실리는 글 중에 영국, 일본, 한국의 학자들이 함께 써서 내야 하는 필요가 생겼다.
그런데 영국, 일본, 한국의 사람들 중 이 세 나라 말을 전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필자밖에 없었다.
그러면 어떻게 논문을 완성했을까?
먼저 영국 동료에게서 영문 논문 초안을 받아 이를 일본어로 바꾸고
필자의 부분을 첨부하여 일본의 동료에게 그 글을 보냈다.
그는 일본어로 자신의 부분을 더한 다음 논문을 완성하여 내게 다시 보냈는데
이를 영국의 동료에게 최종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최소한 자기 이름이 들어간 논문이 어떤 내용을 담은 형태로 완성되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겟는가?
이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필자 입장에서도 10페이지나 되는 일본어 논문을 영국 동료를 위해 영문으로 다시 번역할 엄두는 도저히 나지 않았다.
필자는 일본어 논문 그대로 그에게 보냈다.
주변에 요즘 AI 번역기 좋은 것 많으니 번역기 돌려서 읽어라.
만약 뜻이 통하지 않으면 내게 알려다오. 그 부분을 자세히 설명해 주겠노라고 했다.
며칠 있다 회신이 왔다. AI가 완벽하지는 않은데 거의 문맥이 통하여 큰 이의 없다. 이대로 출판해도 좋다는 회신을 받은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서로 말이 안 통하는 3개국 학자들이 논문 한편을 함께 완성한 것이다.
한국어 학술지.
그대로 둬도 된다.
한국어 논문을 읽고 싶은 외국인은 번역기를 돌려서라도 읽는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문제는 한국어 논문이 구글링에서 확실히 떠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논문이 온라인상에서 완전히 공개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한국어 학술지 자체를 영문화 없이 SCOPUS등재를 시켜야 한다는 것.
이런 부분만 해결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은 개인 베이스로는 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어느 분야나 유능한 분이 많이 계시니,
이런 문제는 해당 분야에서도 곧 해결될 것이고,
필자의 경험도 그 과정에서 조금은 고려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Editor's Note ***
이제는 언어가 더는 장벽이라 해서 변명이 되지 않는 시대다.
요는 퀄러티 아니겠는가?
한국고고학이 작금 쏟아내는 논문이란 것 중에 시장에 통용할 만한 것이 무엇이며 얼마나 될지를 숙고할 시점 아니겠는가?
토기? 축조술?
어느 하나 세계 고고학 시장에 팔릴 것이 없다.
또 한 가지 영문서비스 문제는 그래도 여전히 중요하다. 제아무리 AI가 발달해도 그래서 영문서비스는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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