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농촌은 자연과는 거리가 멀다는 외침을 김단장께서 계속 반복 주입하고 있거니와,
당연히 지금 시골에서 볼 수 있는 농촌의 정경은 "산업화의 산물"이다.
아니 조선시대의 농촌 풍경 역시 "근세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청동기시대의 농촌은 이렇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삼국지 동이전을 보면,
種禾稻·紵麻, 蠶桑·緝績, 出細紵· . 其地無牛馬虎豹羊鵲.
이라 하여 왜의 정경을 묘사하되,
쌀농사, 양잠까지 하고 있지만
소와 말이 없는 상황을 쓰고 있거니와
이 당시 한반도는 남부지역까지 이미 소와 말을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한반도에 소와 말이 언제부터 있었을까?
쌀농사가 시작되면서부터일까?
그것이 아니었을 것이라 본다.
우리가 아는 농촌의 여러 구성요소들은 일거에 몽땅 들어와 이식된 것이 아니고
들어온 시기가 저마다 각각이다.
예를 들어 개는 농사짓기 이전부터 있었다.
개를 뺀 나머지 가축 중 가장 먼저 키우기 시작한 것은 돼지인데,
이 돼지는 우리 생각처럼 우리에 가두고 키운 것이 아니라 풀어 놔서 키웠을 것이다.
이렇게 키운 돼지는 시시각각 멧돼지와 종종 교배하여 오늘날 우리가 아는 집돼지 몰골이 나오지 않는다.
그 다음 들어온 것이 닭, 소, 말로
이 가축들이 들어온 것은 한참 뒤이다. 필자 생각으로는 초기철기시대의 위로는 올라가지 않으리라 본다.
따라서 우리나라 초기철기시대 이전의 청동기시대는
쌀농사를 짓고 양잠을 하지만 개와 돼지 정도만 키우는 농촌 정경이었을 것이고
이런 모습이 그대로 전해진 것이 바로 위지동이전에 묘사된 왜의 농촌 풍경이라는 말이다.
필자는 삼국지 동이전을 극도로 신뢰하는데,
한반도와 왜에 어떤 동물은 있고 없고를 기록한 내용들이 그대로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로 당시 상황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송국리문화 시기에는
아마 그 농촌풍경에 가축이라고는 개와 돼지 정도 있었을 것이고,
닭, 소, 말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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