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중고기 이래 고려 초기 금석문을 보면, 신라 왕실, 혹은 그 왕실 김씨의 시조로 태조 성한이라는 표현이 더러 보이니,
그것을 찬술 연대로 보면 문무왕 사후 신문왕이 건립한 문무왕비에서 아마도 문무왕(김춘추가 기준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음)을 기준으로 해서 “15대조 성한왕星漢王”이라 했으며, 거의 같은 시기에 건립된 문무왕 동생 김인문 비문에서도 “태조성한太祖星漢”이라 했다.
하대로 내려와 흥덕대왕능비 편에서도 “태조성한太祖星漢”이라는 표현이 보이며, 신라말~고려초를 살다간 두 승려 중 진철대사 보월승공탑에서는 그를 일러 “성한星漢”의 후예라 하고, 비로암 진공대사보법탑에서는 그의 선조를 “성한聖韓”이라 했다.
이에서 드러나는 星漢 혹은 聖韓을 찾아 한국고대사는 지난 100년을 허비하면서 이르기를 혹 신라 건국신인 박혁거세라 하고, 혹 석씨왕 창건주인 석탈해라 하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는 김알지 아들로 기록된 세한勢漢, 혹은 열한熱漢이라 하고, 혹은 김씨로는 맨먼저 왕위에 오른 미추를 지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다 개소리에 지나지 않으니, 太祖 星漢(聖韓)은 김알지에 지나지 않는다.
星漢과 聖韓이라는 두 가지 표기 중 후자는 전자에 대한 단순한 가차假借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星漢을 聖漢이라 함으로써 신성성을 더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암튼 그럼에도 없는 허상들을 찾아 한국고대사는 지난 100년을 허비했던가?
고유명사와 일반명사를 혼동했기 때문이다.
‘星漢’을 고유명사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星漢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다.
星漢을 보고는 은하수를 떠올리고, 북극성을 떠올려야 하는데, 이것이 무슨 진짜로 사람 이름인 줄 알고는 없는 허상을 찾아다녔던 것이다.
星漢王이란 말할 것도 없이, 하늘에서 내려온 왕이라는 뜻이다.
그것이 김알지라는 근거는 무엇인가?
첫째, 성한은 모조리 신라 김씨 시조로 언급되었다. 신라 김씨 시조는 오직 김알지가 있을 뿐이다.
둘째, 김알지는 천상에서 강림했다. 그가 내려올 때 자승紫繩, 곧 자색 동아줄을 타고 내려왔다고 했다. 자색은 천상의 최고신인 북극성이 내는 빛깔이다. 이는 곧 김알지가 天帝의 아들인 天子라는 뜻에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금석문에 신라 김씨 시조로 빈출하는 태조 성한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는 전연 보이지 않는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일삼으면서, 한국고대사는 미몽에서 아직도 벗어날 줄 모른다.
태조 성한왕이란 태조이신 북극의 제왕이라는 뜻이다.
그는 김알지다.
(2017. 5. 27)
***
이런 멍충이들이 역사연구자랍시고 완장을 차고 설친다. 星漢이 무언 줄도 모른 채 교수입네 박사입네 까불고 자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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