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 제명천황(斉明天皇) 2년 조 말미에는 그 발생 날짜를 특정하기는 힘들어 '시세(是歲)'라는 표지 아래 다음과 같은 비조강본궁(飛鳥岡本宮) 터 확정과 그 궁궐 완성한 사건을 기술했다.
飛鳥岡本更定宮地。時、高麗・百濟・新羅並遣使進調、爲張紺幕於此宮地而饗焉。遂起宮室、天皇乃遷、號曰後飛鳥岡本宮。於田身嶺、冠以周垣(田身山名、此云大務)、復於嶺上兩槻樹邊起觀、號爲兩槻宮、亦曰天宮。
飛鳥의 岡本에다가 궁을 세울 자리를 다시 정했다. 이때 高麗・百濟・新羅가 모두 사신을 보내 調를 받치자 이들을 위해 이 궁 자리에다가 감색紺色 장막을 치고는 그들에게 향연을 베풀었다. 나중에 궁실이 완성되자 天皇이 그곳으로 옮기고는 이름하기를 後飛鳥岡本宮이라 했다。전신령田身嶺에다 그 봉우리를 빙 두른 담을 쳐서 마치 갓처럼 만들고(전신田身이란 산 이름인데 대무大務라도도 한다), 다시 이 산 꼭대기 느티나무 두 그루 근처에다가 觀을 세우고는 이를 이름하기를 양규궁兩槻宮이라 했는데, 천궁天宮이라고도 불렀다。
역사는 시간과 공간이 씨줄과 날줄을 이루는 거미줄이다. 그런 까닭에 이런 모든 역사 기록에는 시간과 장소가 빠질 수 없다. 시간을 어디까지 기록해야 하는가? 이는 상황에 따를 수밖에 없다. 동아시아 전근대 역사는 대개 해[年] 달[月] 날짜[日]을 밝히거니와, 이를 통해 그것이 발생한 때를 특정한다. '시세(是歲)'란 이렇게 시간을 특정하기는 어려우나, 그 해에 일어난 일이 확실할 때 쓰는 표현이거니와, 이 비조강본궁(飛鳥岡本宮) 건립 건은 전후사정을 볼 적에 그럴 만한 곡절이 없지는 않다. 다시 말해, 이런 궁을 세울 때는 그 터를 확정해야 하며, 나아가 그렇게 해서 막상 공사에 들어가서 그것을 완공하는 공정을 거쳐야 한다. 이런 일련의 사건은 순차로, 그리고 장기간에 걸쳐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일련의 공정을 《일본서기》는 그해 한 해 동안에 죽 계속한 것으로 보고는 '시세(是歲)', 다시 말해 '이해에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고 기술한 것이다.
그건 그렇고, 저 《일본서기》가 말하는 모습이 어땠는지 대강 머리에 떠오른다. 무엇보다 그 궁이 위치하는 모습을 대강 그린다면, 테뫼식 산성을 상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다시 말해, 봉긋한 산봉우리 정상 가운데를 두고, 그 아래쪽 어딘가를 빙둘러가며 담을 쌓은 것이다. 그리고 그 정상에는 마침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어 그 쪽에다가 '기관(起觀)', 즉, 관(觀)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 보면 이 비조강본궁은 볼짝없이 산상 궁전이다.
하긴 이는 궁전 명칭에서도 이런 지정학적 특징은 고스란하다. '비조강본궁(飛鳥岡本宮)'이라는 말은 비조 지역 어떤 언덕에 세운 오야붕 궁전이라는 뜻이거니와, 이 궁전이 여타 궁전에 대해 본산이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비조(飛鳥), 즉, 아스카는 이 무렵 왕경 이름이니, '강(岡)'이란 흔히 '언덕 강'으로 새기거니와, 《설문해자》에서는 이 글자를 "산 줄기다. 山이 뜻이며, 网이 소리인 형성자다. 위는 뾰족하고 아래는 넓은 모양을 취했다(山脊也。从网从山,取上銳下廣形)"고 하고, 《이아爾雅·석산釋山》에서도 "산 허리를 강(岡)이라 한다"면서, 그 예문으로는 《시詩·주남周南》 편에 보이는 "저 높은 산을 오르네(陟彼高岡)"라는 구절을 들었다. 이 글자는 "阬"이라고도 쓰기도 하며, 《운회韻會》에서는 "속세에서는 뫼 산(山)자를 덧붙여 "崗이라 쓰기도 하지만 잘못이다"고 했으니, 어떻든 이 글자는 그 기본 의미가 평지에 불뚝 솟은 언덕 혹은 산임을 안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한 궁전인가? 이 궁을 세운 일을 《일본서기》에서는 '기관(起觀)'이라 했다. 이는 이 宮이 觀의 일종임을 폭로한다. 그렇다면 觀이란 무엇인가? 이 말은 '관점(觀點)'이라든가 '관광(觀光)' 같은 요즘 말에서도 흔히 쓰이거니와, 동사로 눈으로 보는 인지 작용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에서 비롯되어 觀은 명사로서는 그렇게 눈에 보이는 돌출한 기념물로 발전한다. 고대 중국 이래 주로 전승대첩을 기념해, 그렇게 죽인 적들의 시체로 쌓아올린 기념물을 '경관(京觀)'이라 하거니와, 이 경우 京은 크다는 뜻이고, 觀은 동사보다는 명사로서 볼거리가 되는 건축물 기념물을 의미한다. 한데 이 觀이 종교적인 맥락에서는 불교의 사찰에 대비되어 흔히 도교의 사찰을 의미한다.
하고 많은 곳 중에 왜 궁전을 산상에다가 세웠겠는가? 이런 곳은 삼척동자도 왕자가 상거(常居)하면서 왕국을 통치하는 공간이 될 수 없음을 안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한 宮인가? 말할 것도 없이 神을 위한 궁전이다. 산상은 천상과 가까운 곳이라 해서, 흔히 천상에서 강림하는 신을 맞이하는 시설을 설치했다. 비조강본궁은 말할 것도 없이, 이런 종교제의 시설이다.
그렇다면 이 궁에서 맞이하는 신은 누구인가? 그것이 천신임은 명백하다. 그것은 이 궁전을 달리 천궁(天宮)이라 불렀다는 점에서 명백하다. 다만 조심할 대목은 동아시아 세계에서 천신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였다는 사실이다. 천상 역시 인간세계와 마찬가지로 그 최고신격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무지막지 많은 신이 존재했다. 아무튼 비조강본궁은 천신을 대접하기 위한 접대 시설이었던 것이다.
한데 그 신을 모실 공간으로 세운 건물을 觀이라 했으니, 이건 볼짝없이 도관(道觀)이다. 도관이란 무엇인가? 도교 사원이다. 이는 그것을 天宮이라 불렀다는 점에서 명명백백하다.
그렇다면 이 비조강본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는 틀림없이 그 평면도가 팔각이었을 것으로 본다. 팔각형 궁륭 건물이었을 것이다. 그 궁륭 꼭대기에는 틀림없이 이슬을 받치기 위한 승로반(承露盤)이 있었을 것이며, 아마도 꼭대기에는 봉황 장식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내가 아는 도관의 상식이며 가장 비근한 보기가 박혁거세 탄강지 나정에서 확인한 신라시대 팔각형 건물(첨부사진)이 그것이다. 작금 일본 고고학계가 비조궁(飛鳥宮)이라 해서 발굴해 놓은 곳은, 후대 천황이라 일컫는 자의 궁전을 말하는 것이요, 비조강본궁은 결코 아니다. 비조강본궁은 틀림없이 이 궁궐 인근 산상, 혹은 주변 언덕 어딘가에 세웠을 것이다.
이것이 도관이라는 사실은 일본 도교학계에서는 일찍이 지적됐다. 특히 후쿠나가 미쓰지(福永光司)는 이 기록을 중대하게 받아들였으니, 일본열도에 이미 이 무렵에 도교는 도관을 지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실로 막강했다는 표징 중 하나로 삼았다. 나 역시 그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처럼 이 비조강본궁은 삼척동자가 봐도 도교 사원인데, 막상 동북아역사재단 《역주 일본서기》는 무엇이 두려운지 이를 "높은 망루"라 옮기고는 그것을 주석하기를 "외부나 먼 곳을 보기 위해 궁문의 좌우에 설치한 높은 대이다. 觀을 도관, 즉 도교의 사원으로 보기도 한다"고 했다.
비록 도관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긴 했지만, 이는 불상을 보고도 불상이라는 견해도 있다는 식의 실로 안이하기 짝이 없는 견해거니와, 이런 것들을 보면 명백히 한일 고대사학계에는 도교에 대한 그 어떤 격렬한 저항정신이 있음을 알아챈다. 도교라고 하면 덮어놓고 배척하고, 도교라고 하면 덮어놓고 의심하며, 도교라 하면 덮어놓고 일단 아니라고 지랄발광부터 떠는 모습을 내가 너무 자주 봤다.
나아가 저 비조강본궁을 더욱 보탠다면 이는 볼짝없이 곤륜산 혹은 봉래산은 흉내낸 기념물이다. 그곳에는 서왕모가 상거하면서 천신이 강림하는 곳이다. 도교는 북위시대 구겸지 이래 등장한 종교 흐름 중 하나로, 그 이전에도 道敎라는 명칭이 보이기는 하나,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도교를 명확히 지칭하게 되기는 구겸지에서 비롯한다. 그 이전 혹은 도교라는 명칭 등장 이후에도 도교는 귀신을 섬기는 종교라 해서 귀도鬼道라고도 하고, 신도神道라고도 했다. 지금의 독특한 일본 종교사상을 지칭하는 용어 신도는 실은 도교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神이 강림하는 산을 흔히 천주(天柱)라고도 했다. 그런 대표적인 곳으로 곤륜산이나 봉래산, 혹은 태산 등이 있으니, 천주란 곧 천궁(天宮)의 별칭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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