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역사를 업業으로 주물하는 사람들한테 노골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이것이라,
얄팍한 역사지식으로 짐짓 그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하는 외교 노선이라 주장하며 설레발을 치거니와
거란 여진이 패권을 잡은 시대 고려, 그리고 신흥 강국 만주 여진족이 세운 청이 노쇠한 한족 기반 명나라와 대치할 적에 광해군이 보인 행보를 실리외교라 하면서 그것을 쳐받들면서,
강국에 쌓인 한국이 지향해하는 외교노선이 바로 저에서 교훈이 있다면서 曰, 그것을 본받으라 한다.
저 중에서도 광해군이 이상하게 과대포장되어 한때 뜨기도 했으니, 특히 노무현시대가 그러했으니,
이 시대에 아마 광해를 주인공 혹은 그 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드라마 혹은 영화가 극성을 구가했을 것이니, 노무현 자신도 내 기억에 광해를 자신의 롤 모델로 삼았던 것이 아닌가 기억한다.
그리하여 저 시대 광해의 그런 측면을 부각하는 역사학도들이 불려나와 우리의 스승이 여기 있노라 설레발을 쳤다.
그렇다면 과연 실리노선이라는 말이 가당키나 한가? 저 실리 혹은 실리외교라는 말은 혹 탁상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물을 수는 없는가? 나는 이를 물으려 한다.
막상 광해를 그리 불러낸 노무현 혹은 그 정권만 해도 진짜로 실리외교를 추구했는가?
내 보기엔 천만에. 노골하는 반미주의였고, 그에 상응하는 노골적인 친중노선이었다.
이는 그것을 계승했다는 문재인 정부시대에 더욱 극성을 부렸으니, 말로는 입으로는 실리라 했지만, 한 쪽을 포기한 한 쪽으로의 구애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실은 그네가 추구한 정치노선에서도 그대로 드러났으니, 그 이전 시대 이른바 진보 보수라 해도 적어도 겉으로만큼은 상대를 포용하려는 모습을 보이려 무진장 애를 썼으니, 삼김시대 마지막을 장식한 김영삼 김대중이 그 전형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저들의 계승을 표방한 이후 정권은 전연 달랐으니, 이들은 그 선배 혹은 스승이 보인 적어도 겉으로나마 상대를 포용하려는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어느 한 쪽을 악마 적으로 모는 반면,
그 방식으로 통해 다른 한 편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어내는 방식을 채택했으니 이것이 지금의 윤석열 정권에서도 하등 변화가 없다.
어차피 양쪽으로 갈라진 판국에 어느 한 쪽만 확실히 지지를 획득해도 50%를 얻는다는 결론이 나오며, 실제 노무현 이래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오직 이 길을 통해서만 달렸다.
마침 미국에서도 그런 흐름이 트럼프 집권 과정에서 더욱 뚜렷해져 크로스보팅이라는 관행 자체가 트럼프 이후에는 미국에서도 완전히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간단히 말해 실리외교를 표방했지만, 실제 그것은 실리랑은 전연 거리가 멀었으니
실리는 간단히 말해 양다리 걸치기였지만, 그것을 표방한 자들부터 양다리는 온데간데 없는 어느 일방으로의 독주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고려는? 광해는? 진짜로 실리외교를 추구했는가? 더 정확히는 그런 실리를 통해 양쪽에서 다 실리를 챙겼는가?
천만에. 내가 보는 한 양쪽에서 얻은 것과 한 쪽을 추구해 얻은 것을 합산하면 결국 그 총량은 같을 수밖에 없다.
예컨대 거란 송나라 사이에서 실리를 추구했다는 고려만 해도 그 실리가 잦은 거란의 내습을 불렀으니, 그 과정에서 실은 참혹한 피해를 감내해야 했다.
요컨대 실리라 하지만 실리를 챙긴 적은 한 번도 없고 그게 그거였다.
고로 실리외교?
개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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