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江南은 강 남쪽이라는 뜻이라, 지구상 어디건 강 남쪽에 위치하는 땅은 이리 부르지만, 한국에서는 특화해서 한강이 관통하는 서울 남쪽 땅, 개중에서도 잠실을 중심으로 그 언저리 서울 동부지역을 지칭한다.
이 강남이 주는 이미지는 이상 야릇해서 간단히 졸부와 등치하니, 그러면서도 20세기 대한민국 엘도라도라 할 만하다.
그런 강남을 그렇게 묘사한 영화도 있고, 그런 강남을 무대로 장대한 드라마를 써내려간 대중가수도 있거니와, 그런 강남이 순전히 고고학적 발굴성과에 기초하기는 하나 이상야릇한 또 하나의 측면이 있으니,
느닷없이 졸부로 출현했다가 느닷없이 그런 위상을 상실하고서는 이후 물경 천오백년간이나 황무지로 방치되었다는 사실이 기이하기만 하다.
물론 이 강남이라 해서 저 기간에 다 버려진 것도 아니요, 곳에 따라 그 번성하기 이전에도 번성한 시대가 없지는 않았으니, 암사동이니 하남이니 해서 더러 선사시대에도 밀집한 지역이었음을 웅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저 강남, 곧 잠실 주변 일대 강남을 볼짝시면 사정이 달라서, 또 앞으로 고고학 발굴조사 결과에 따라 얼마든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이곳은 명백히 2천년 전 신도시로 개발되어 오백년을 번성한 지역이다. 그 신도시 개발 이전 이 일대는 황무지였다.
그런 황무지에 백제라는 신생 왕조가 들어서 그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개발했으니, 지금의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그리고 석촌동고분군은 그러한 신도시 개발의 역사를 웅변하는 위대한 기념물이다.
저들 지역은 현재까지는 아무리 파봐도 백제 문화층 이전 사람 흔적은 없다. 있다 해도 뜨내기 수준을 면치 못한다.
그런 광활한 땅이 버려진 까닭은 범람 말고는 찾을 길이 없다.
지금이야 대규모 토목 공사를 통해 강을 제어하는 시대에 들어가서야 그렇지, 전통시대 강변 충적지대 중에서 사람이 살 만한 데는 딱 정해져 있어, 그에서 상대적인 안정감을 주는 둔덕 혹은 산기슭 말고는 없다.
언제건 강물이 넘쳐 쓸어버리는 데다가 신도시를 건설할 수는 없다.
이는 역설적으로 그럼에도 왜 백제는 저곳을 터전으로 삼았는지 하는 의구심을 증폭하는데, 이 이야기는 길어져서 간단히 결론만 이야기하면,
백제가 이 땅에 등장할 무렵에는 그네가 정착할 만한 데라고는 이미 송곳 꽂을 데도 없어 저와 같은 황무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기원전 18년 마침내 새로운 왕조를 신축한 백제는 이곳을 터전으로 500년간 번영을 누리거니와, 무엇보다 도성과 왕성과 왕릉이 모조리 이 일대에 포진한 것이다.
이들이 번영하기 위한 제1 조건은 물의 관리였다. 그것이 버려진 이유는 곧 그것이 번영한 이유가 된다. 그랬다. 저들은 끊임없이 물과의 쟁투를 벌여 물을 제어했다. 그 제어를 바탕으로 두 성과 왕릉군 일대에는 대대적인 왕경 조성사업을 벌였으니,
저 기간 지금의 강남 일대는 지구상 어느 지역 대도시를 버금하는 대도회였다.
그런 백제가 서기 475년 10월 삼만 대군을 이끌고 남하한 고구려 장수왕에 무너져 무참히 파괴됐다. 도성을 불탔고 사로잡힌 백제 개로왕은 목이 달아났으며, 포로 8천명이 개끌리듯 압록강 너머로 끌려가 그곳에서 노예로 품빠이 됐다.
그네가 물러난 자리에 신라 구원군 1만을 이끌고 돌아온 문주는 이곳에서 더는 백제는 재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서는 남쪽으로 날아 지금의 공주에 정착했다.
백제가 비운 강남은 여전히 백제 영역에는 속했지만, 이미 앙코 빠진 찐빵이라, 과거의 영광만을 기억한 채 서서히 뇌리에서 사라졌다.
이곳을 고구려가 한때나마 주둔한 흔적이 있고, 이후 신라 또한 경영한 흔적이 있기는 하지만, 종래 500년 한성시대 백제의 그것과는 천양지차가 나서 실상 버려진 땅이었다.
버려진 강남은 한강 차지로 도로 돌아갔다. 백제한테 밀려난 한강은 500년을 숨죽이고 기다리다 마침내 주인 자리를 되찾고는 그곳을 다시 자기네 영토로 삼았으니, 물러난 백제 위로 홍수로 그것을 갚음했다.
그랬다. 그 위로 순식간에 토사가 덮쳐 지하 5미터 아래로 백제가 있었다는 흔적은 잠식했다.
이런 사정이 을축년대홍수라 해서 별반 다를 바 없었고, 다시 그것을 지난 반세기 뒤에야 사람이 들이차기 시작했으니, 1960년대 말에 시작한 강남 개발 붐은 다시금 강남을 역사의 주역으로 당당히 등장케 한다. 경부고속도로가 관통한 강남은 더는 지난 시절의 강남, 황무지화한 강남이 아니었다.
마천루가 즐비하게 들어섰고, 그 즐비한 마천루는 한강의 기적으로 통했다.
한때 끊은 욕망이 천오백년을 숨죽였다가 살아난 땅, 그곳이 강남이다.
'ESSAYS & MISCELLANI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려와 광해군이 실리외교라는 낭설에 대하여 (18) | 2024.03.01 |
---|---|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던져진 내 삶 (1) | 2024.02.29 |
거란, 유쾌 통쾌 상쾌를 넘어선 파트너로 (1) | 2024.02.28 |
씨름하는 식민지시대, 곁다리 고려 거란 (1) | 2024.02.28 |
일본통치기 조선의 재편은 곧 근대국가 탄생의 생생한 보기다 (1) | 2024.02.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