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마다 우리는 언제나 적당한 골리앗을 불러내 다윗을 자처한 우리 스스로가 그런 거인을 쓰러뜨리는 일을 소일로 삼고는 그러한 일을 유쾌 통쾌 상쾌로 치부하곤 했으니
근자에 저런 자리에 손님으로 불려나온 이가 거란이라.
수나라도, 당나라도 불려나와 유희거리가 된 판국에 거란쯤이야 해서겠지만, 또 그런 그간의 심리 이면에는 거란으로서는 약발이 약해서였는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거란을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강력한 힘과 광활한 영토,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무장한 거대 제국이었다.
그네들 영토는 동서로 만리를 걸쳤다 했으니, 실상 그 땅덩어리만 해도 한 제국, 수 제국, 한 제국을 능가하며, 당대 중국 대륙을 장악한 송宋조차 발 아래 두고서는 형으로 군림하며 매년 따박따박 세폐라는 이름의 막대한 조공품을 받아갔다.
고려 건국과 거의 때를 같이해 동아시아 절대 패자로 자리잡은 거란은 그네들 발 아래 두고선 한땐 갖은 조롱을 일삼은 여진족한테 망하기까지 200년간 저와 같은 절대의 패자로 군림한다.
그런 존재가 뒤늦게 부각된 까닭인지, 그런 골리앗을 불러내 돌팔매질로 때려눕히는 다윗의 장난감으로는 너무 뒤늦게 등장한 감이 있다.
단언하지만 거란을 저리 불러낼 수는 없다. 그네와 한때 고려가 치고받았고, 그 과정에서 한 번 처참하게 개박살나기는 했지만, 그것이 어쩌 전부이겠는가?
그 한 번 난 개박살을 제외하고서는 시종일관 고려는 거란에 신속하며 살 길을 도모했으니, 그러한 과정에서 두 왕조는 끊임없이 교유하며 국제사회 일원으로 각기 주어진 역할을 하고서는 종국에는 사라졌다.
거란은 그네가 구축한 동아시아 국제일서 종가였고, 이러한 위치를 발판으로 끊임없이 주변을 포섭하고 때로는 압도하는 군사력으로 정복하며 그네들이 부족한 것들을 채워나갔고, 그렇게 해서 채운 것들을 주변에서는 다시 퍼다날랐다.
고려 역시 마찬가지라, 거란이 남긴 흔적은 비단 귀주대첩 혹은 이른바 강동육주로만 남은 것이 아니었으며, 일상 곳곳을 파고 들었다.
지금 우리한테 필요한 것은 유쾌 통쾌 상쾌를 주는 골리앗 거란이 아니라, 한반도와 교유한 파트너로서의 거란이다.
그래 그 값싼 내셔널리즘이 꼭 적폐물이기는 하겠냐마는, 또 그런 까닭에 저렇게 해서라도 우리한테 기쁨과 통쾌를 주는 거란이 스스로를 희생하며 거란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웠다 하면 그것으로도 의미는 없지는 않을 터이지만, 그것이 지난 자리에 돋아나는 허무는 이제 문화로 채워야 할 때다.
유쾌 통쾌 상쾌는 한 번의 마스터베이션으로 족하다.
거란은 우리 역사를 누구보다 풍부히 해 준 고마운 존재다. 이 점을 하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장남원의 도자 산책] 거란의 흔적
입력 2024-02-27 00:29
업데이트 2024-02-27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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