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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고려 태조 왕건의 태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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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박물관 소장 이 순화 4년명 청자는 내가 계속 말하듯이 고려 종묘에 안치한 왕건 안태용이었다. 저기 담을 것은 태밖에 없다.

 

고려 태조 왕건 태실이 어디 있는지는 고려사랑 고려사절요에는 탈락했다. 

왜 없는가? 

있었는데 기록이 누락됐다고 나는 본다. 거란 침략에 목종 이전 7대 실록이 모조리 불타서 실제 고려사랑 그 절요 목종 이전 기록은 보면 다 쥐어뜯긴 헤밍웨이 다랑어 같아서 빈약함을 면치 못하거니와, 그런 과정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대신 조선시대 문헌에 더러 그의 태실과 관련한 증언이 남았으니 아래 소개하는 송도지松都誌가 개중 하나라, 

이 송도지를 소개하기를 

고려高麗의 서울이던 개성開城의 사적史跡(史蹟)을 적은 지지地誌. 조선시대 16대 인조 때 김육金堉·조신준曺臣俊이 지은송도잡기松都雜記를 뒤에 증보增補 개정改定하여 송도지松都誌라 했음. 계속 증수增修되다가 21대 영조 때 오수채吳遂采가 속지續誌 1권을 증보增補, 22대 정조 6(1782)년에 정창순鄭昌順이 비로소 완성完成했음. 7권 2책. 인본印本.

이라 하거니와 

그 권卷2 산천山川 인달암因達巖 조에 아래와 같은 논급이 보인다. 

번역은 거칠게 뜻만 전달하고자 마구잡이로 했으니, 혹 인용하고자 하는 분들은 세심한 주의를 요한다. 뭐 말은 이리 하지만 그리 틀림은 없을 것이다. 

因達巖. 悟道嶺上同. 大興洞. 自朴淵而上, 山漸高, 水益淸, 巖石甚奇峻. 至觀音窟前, 水深成池, 有石出水心, 曰龜潭. 又上數里, 有石光潔, 長可數步, 流泉汨汨, 細布其上, 滑緩無聲, 下射沙堤, 逗爲深湫, 四面皆石, 或如案榻, 或如墻屋. 又上數里, 有泉出自東崖, 曰普賢洞. 又上數里, 曰馬潭, 又上數里, 曰大興寺. 寺之上有圓通·詩穴·禪巖·寂照等菴, 又有海印·聚雲·法林·泰安·雲谷等古基. 泰安乃高麗太祖胎室也. 在聖居山在天磨·聖居兩山之間

인달암因達巖은 오도령悟道嶺 위와 동일하다(같은 곳을 지칭하는 명칭이라는 뜻인가?) 대흥동大興洞은 박연朴淵폭포에서 올라갈수록 산세가 점점 높아지며 물은 더욱 맑이지며 암석巖石은 더욱 기이하고 험준하다奇峻. 관음굴觀音窟 앞에 이르러 물은 깊어지고 연못을 이루는데 돌이 물 속에서 돌출하니 이를 일러 귀담龜潭이라 한다.

또 위로 여러 리를 가면 돌이 있어 광채가 맑은데 길이가 여러 걸음이라 흐르는 샘이 汨汨하며 세포細布가 그 위에 있는데  滑緩하나 소리가 없어 아래로 沙堤를 쏘니(?) 그에서 모여 깊은 연못이 되는데 사면이 모두 바위라 혹 그 모양이 책상案榻 같고, 혹 담벼락 같다. 다시 위로 수 里를 가면 샘이 동쪽 벼랑에서 솟는데 보현동普賢洞이라 한다.

다시 수 리를 올라가면 마담馬潭이라는 곳에 이르며 다시 여러 리를 가면 대흥사大興寺라. 이 절에는 원통圓通·시혈詩穴·선암禪巖·적조寂照 등의 암자가 있다. 더불어 해인海印·취운聚雲·법림法林·태안泰安·운곡雲谷 등의 옛 터가 있다. 개중에서도 태안泰安은 곧 고려高麗 태조太祖의 태실胎室이다. (태실은 천마天磨·성거聖居 두 산 사이에 있다.

 

저 태실은 내가 현장을 보기 전에는 뭐라 할 말은 없다. 

구글이가 아주 상세한 위성사진을 제공한다면 참고할 만하다 하겠다. 그건 그렇고 저 태실이라는 데가 제대로 남아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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