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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공영公營의 역설(2016)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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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문제는 여러번 지적했다. kbs는 국영에 가까운 공영이라지만 청와대가 주인 노릇하며, mbc는 공영방송을 표방하지만, 언제나 낙하산이 떨어지고, 연합뉴스는 국가기간통신사를 표방하지만 실은 청와대가 경영진을 낙점한다.

우리는 매양 공영이 바람직하다고 부르짖는다. 그 모델은 언제나 bbc 혹은 nhk였다. 그러면서 언제나 공영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그것이 그럴 듯하기 때문이다.


공영이란 공공이 운영 주체라는 뜻이다. 거기에는 국가 혹은 권력이라는 말이 어디에도 없다. 이것이 이상이다. 하지만 그것이 대한민국에 낙하할 적에는 언제난 公은 국가 혹은 권력과 등치한다. 이는 정권이 보수에서 진보로, 진보에서 보수로 되었다 해서 결코 변함이 없었으니, 설혹 진보의 시대에도 끊임없이 낙하산은 떨어졌다.

 



지금의 시대, 제 목소리를 그나마 내는 곳은 민영밖에 없다. 우리는 민영화를 곧 공공성의 상실로 봤다. MB 정부에서 케이블 채널 허가를 남발할 때, 그리고 그 시행 초창기엔 케이블 채널에 대해서는 눈쌀을 찌푸리곤 했다. 저급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난세가 된 지금, 언론 소임을 그런 대로 하는 곳은 민영 뿐이라는 역설을 또 마주한다. 요새 광폭 행보를 보이는 곳이 sbs다. 이 sbs 요즘 보도를 보면 jtbc를 위협한다.

국가의 권력이 지나치게 강대한 대한민국에서 공영은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연합뉴스는 국가기간통신사로 지정되어 있다. 문제는 국가다. 이 국가는 늘, 그리고 언제나 대통령 혹은 권력과 등치되었다. 대통령이 탄핵되고 식물인간이 된 지금도 저 연합뉴스 경영진 또라이들은 여전히 대통령을 보호해야 한다고 본다.

 



21세기에 국가를 내세울 수는 없다. 그것은 파시즘이요 나찌즘이다. 국가 대신 국민을 내세울 것이며, 하지만 이 국민 nation 역시 언제나 내셔널리즘을 기반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시민으로 바꿔야 한다. 언론은 시민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시민과 공동체를 위해 복무해야 한다.

오늘 어떤 강연 자리에서 나는 조선왕릉을 이제는 국가, 국민의 품에서 시민, 공동체의 품으로 돌려주자고 말했다.

(2016. 12. 21)

 

***

 

시대가 바뀌었다. 아니 정확히는 집권세력이 교체되었다. 저때 말한 이 공영의 역설이 지금이라 해서 바뀌었는가? 세력만 교체되었을뿐, 저에서 표출한 문제의식은 대체로 반복한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있다. 사람만 바뀌었을 뿐, 권력을 위해 봉사하는 언론은 변함이 없다. 집권세력이 교체되면 또 다른 세력이 나타나 또 칼자루를 휘두를 것이다. 

 

말한다. 

 

공영언론은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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