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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과서 약으로 쓴 두더지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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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이 개최 중인 임인식 사진전에 선보인 장면 중 하나가 이것이라, 설명에 의하면 1954년 한국전쟁 직후 포착한 청계천 판자촌 한 장면이라 한다. 

이 판자촌은 놀랍게도 이명박 서울시장에 의한 청계천 복원 직전까지 그 모습을 유지했다. 

이 개발사업으로 판자촌은 지금은 어디에서도 흔적조차 찾을 수 없고, 오직 청계천박물관 인근 청계천 변에 복원한 몇 채가 남았을 뿐이지만, 그만큼 그 내력은 질겨서 얼마전까지도 서울의 일상과 함께했다. 

저 안내판을 어찌 읽어야 할지 실은 아리송한 대목이 있다. 
윗부분을 가로로 읽어 명산약名山藥이라 하고, 그 아래로 그 세목으로 구렁이 살모사 두더지를 나열한 것인 듯한데 약구렁이, 산살모사, 명두더지로 읽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 장면을 지나는 사람들 반응이 나로서는 아주 재미있었다. 구렁이 살모사가 약으로 썼다는 정도는 대개 기억하는데 다들 두더지를 약으로 썼다 하니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으니 말이다. 

이 두더지는 약으로 과서 먹었다. 

문제는 두더지는 잡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는 점이다. 이 두더지는 나같은 시골깡촌 출신도 그네가 온통 파제낀 두더지 굴이야 일상으로 만났지만, 저놈들은 여간해서는 지상으로 노출하는 법이 없어, 실물 구경하기는 몇 번 되지 않으며, 가끔씩 쥐약 먹고 죽었는지 그렇게 해서 나뒹구는 사체만 보았을 뿐이다. 

한번은 묫자리 잔디밭을 달리는 두더지를 발견하고선 냅다 달려가서 발로 밟았더니, 세상에 나, 잡았다 생각했는데 발을 들어보니, 굴을 파고는 유유히 사라진 것이었다.

그만큼 두더지는 구경하기도 잡기도 힘들었다. 
 

딱 봐도 약 되게 생겼자나?

 
그렇게 잡은 두더지는 과서 약으로 썼다. 특별한 병증은 내가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과서 먹는 두더지는 별미였다고 내가 기억한다. 생각보다는 먹을 만 하다. 

보약강장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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