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글씨는 옛날에는 진晉나라 사람 글씨를 배웠습니다. 하지만 순전히 팔을 써서 그저 모양만 추구하였고, 예로부터 서학書學에 대해 강론한 적이 없었으므로 이따금 글씨에 능한 명필이 배출되었더라도 일종의 거칠고 속된 기운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근일에 김 추사秋史 글씨가 성행하는데, 경솔한 데다 더욱 구속됨이 없어 드디어 마계魔界로 들어가 약으로도 구제할 수가 없습니다.
일재日齋의 글씨는 결구가 원만하고 정돈되었으며 풍채가 유창하고 아름다워 비록 골력이 약간 허약하지만 고상한 운치가 넉넉하다 하겠습니다.
재주와 식견이 빼어나지 않았다면 어찌 누적된 악습에서 물결을 되돌려 홀로 깃발 하나를 세우고서 옛사람과 겨룰 수 있었겠습니까?
완상하면서 손에서 차마 놓지 못하여 이에 몇 마디를 덧붙여 공경하는 뜻을 표합니다.
동치同治 5년(1870) 곡우일에 못난 아우 오경석吳慶錫
吾東書, 向師晉人, 然純用偏筆, 徒取形似, 從無講究書學, 故往往得能書之名者, 亦未免一種笨俗氣.
近日金秋史書盛行, 而率易益不拘束, 遂入于魔界, 不可救蔣矣.
日齋書, 結構圓整, 風采流麗, 雖骨力稍弱, 饒有雅致, 若非才識超軼, 安能回瀾於積習, 而獨樹一幟, 與古人頡頏耶.
玩賞不忍釋, 因贅數語, 以志歆佩.
同治庚午穀雨日, 愚弟吳慶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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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박물관 제42회 기획전
성균관의 보물
출품작이다.
진나라 사람이란 왕희지를 말하며 일재는 누군지 찾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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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재가 다음 사람일 것이라는 지적이 기호철 선생발로 있다.
이찬모 [李贊謨]. 서화: 서. 생몰년: 1825 - ? 자: 일여(日汝). 호: 일재(日齋). 본관: 전주(全州). 가계: 화원 장준량(張駿良, 1802-1870)의 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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