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카이로였습니다]
이제 카이로를 떠나 한국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오늘날의 카이로는 아프리카와 중동의 아랍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입니다만 멤피스(Memphis) • 테베(Thebes) • 룩소르(Luxor) 등 고대 서아시아 세계를 호령하던 유서 깊은 도시들과 비교하면 그 역사가 겨우(!) 1,300년 남짓인 신도시입니다.
그리스 지배기(기원전 332-30년)부터 멤피스는 쇠퇴하기 시작했고 로마 지배기(기원전 30년-기원후 395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로마 제국은 멤피스 북쪽에 "이집트의 바빌론"(Babylon-in-Egypt)이라는 대규모 요새를 건설하여 멤피스를 대체하려 했습니다.
기원후 451년 칼케돈 공의회(Council of Chalcedon)를 계기로 동방정교회(Eastern Orthodox Church)와 이집트의 콥트교회(Coptic Church)가 분리되면서 이집트인들은 비잔틴 제국(Byzantine Empire: 395-1453년)의 극심한 차별과 탄압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639년 제1대 칼리프 아부 바크르(Abu Bakr: 632-634년)에 의해 시리아 지역을 담당하는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아므르 이븐 알-아스(Amr ibn al-As: 585-664년) 장군이 이끄는 아랍 군대가 이집트를 침공하자 콥트교회의 지도자들은 아랍 침략자들에게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640년 10월에서 641년 4월까지 이어진 공성전을 통해 아므르 이븐 알-아스는 바빌론 요새에서 농성(籠城)하던 비잔틴 제국 군대의 항복을 받아냈고 그 결과 이집트는 아랍제국의 속주가 되었습니다.
당시 아랍 군대가 진을 치고 있었던 지역이 "천막"(tent)을 의미하는 الفُسطاط "알-푸스타트"(al-Fustat)로 발전하면서 아랍에서 가장 큰 도시로 번성하게 될 카이로의 원형이 배태되었습니다.
이후 아랍 제국(641-969년)의 침체기에 접어들자 한 무리의 북아프리카 군대가 969년 이집트를 침공하여 정복했습니다.
이들은 푸스타트 북쪽에 새로운 주둔지를 건설했는데, 전설에 따르면 이때 무운(武運)을 상징하는 화성의 세력이 강해지는 7월 1일을 택했다고 합니다.
아랍어로 "정복하는 별"(Conquering Star), 즉 "화성"을 뜻하는 النجم القاهر "안-나짐 알-까히르"(an-Najm al-Qāhir)에서 자신들이 새로 새운 도시의 이름을 부여했는데 이 이름이 바로 "정복자"(Conqueror)를 의미하는 القاهرة "알-까히라"(al-Qāhirah)였습니다.
현재 우리에게 친숙한 카이로라는 이름은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했습니다.
쉬아 파에 속했던 북아프리카 무슬림들은 알-까히라를 수도로 하는 파티마 왕조(Fatimid Dynasty: 969-1171년)를 수립했는데 이 왕조는 동쪽의 순니 파 왕조와 경쟁하며 세력을 확장했으며 카이로는 지중해와 레반트,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최고의 상업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고대 이집트학과는 별로 상관없는 도시지만 이집트의 중세와 근세, 그리고 현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카이로는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매력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나 실망시키고 상처 주기를 주저하지 않는 불가사의한 곳입니다.
이번 방문에서 버스를 타고 타흐리르 광장(Tahrir Square)을 몇 차례나 지나쳤습니다. 문득 2011년 이집트를 방문했을 때가 마치 어제 일처럼 떠오르더군요.
룩소르처럼 카이로 역시 떠날 때마다 다시 돌아오고 싶은 곳입니다. 아니 이집트라는 나라 자체가 그렇습니다.
공항 로비에서 환승을 기다리며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그럼 곧 한국에서 뵙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들 되시길…
#카이로 #룩소르 #푸스타트 #아므르_이_알_아스 #알_까히라 #파티마_왕조
사진 설명: 그랜드 나일 타워(Grand Nile Tower) 호텔에서 바라본 나일 강과 카이로 도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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