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문화재 업계를 배회하는 유령 중 하나가 관광을 문화재의 적으로 삼아, 매양 하는 말이 관광을 적절히 제어해야 하며, 무분별한 관광 개발은 문화재로서는 피해야 하는 숙명과도 같은 암묵적 동의가 팽배하다는 점이다.
말한다. 개소리라라고.
관광은 문화재의 부산이 아니라 실상은 정반대라 문화재가 관광에 빌붙어 먹고 살았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두 산업이 탄생 성장한 내력을 봐도 관광이 먼저였지, 문화재는 언제나 후발주자였고, 언제나 관광 꽁무니만 좇아서 객지를 놓을 뿐이었다.
베네치아는 문화재라는 개념이 생성되기 훨씬 전 이미 선캄브리아 후기부터 관광지였으니, 아마도 이탈리아 땅은 한 번도 밟아보지 아니했을 잉글랜드 섬나라 셰익스피어가 이태리를 무대로 하는 각종 희비극을 써제낀 내력이 바로 셰익스피어 당대를 풍미한 이탈리아 관광 병에서 비롯한다.
셰익스피어 훨씬 이전에 이미 캔터베리대성당은 순례지로 각광받아 봄이면 순례객으로 넘쳐나고 그 일대 여관은 예약이 불가능했다.
금강산은 우리한테 주어진 자료에 의하는 한, 이미 고려시대에 관광의 총아로 각광받아 그곳 관광이 꿈인 사람이 줄을 이어 등장했으니, 명승 혹은 사적 혹은 보물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이미 천년 전에 금강산과 그 일대 명승, 그리고 고찰은 전국적인 유명세를 넘어 당시 중국에까지 알려졌으니, 그리하여 한반도를 방문하는 중국인 중에도 금강산 관광을 꿈꾸는 자가 있었다.
지들이 언제부터 문화재였다고, 틈만 나면 헤러티지는 관광을 적절히 제어해야 한다고 헛소리란 말인가?
거창 수승대는 명승이라는 개념이 이땅에 상륙한 1933년 훨씬 수백 년 전에 이미 수승한 곳이라 해서 참배객으로 줄을 이었으니, 특히 퇴계가 다녀가고선 거기다 sns 글귀 하나 남기고서는 퇴계를 조종으로 삼는 남인들은 줄이어 그곳으로 달려가 그 밑에다 댓글 공작을 벌였으니
그렇게 개발한 관광지, 그렇게 그들의 관광한 바가 비로소 500년이 지나 명승이 된 것이다.
문화재는 관광의 기생충이다. 언제나 그 꽁무니를 좇을 뿐이었다.
주객을 명확히 세워야 실상이 제대로 보이는 법이다.
종래 그리고 지금의 관광 문화재업 관계는 근간을 흔들어야 한다.
관광이 문화재를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방방곡곡 지구촌 곳곳에서 싸지르는 중이다. 그 숫자는 바퀴벌레 알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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