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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관서지방 여행 (4) 이조성二条城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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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이조성二条城 경도어소京都御所
 
2-3-1 이조성二条城 

2-3-1-1 개황 

 

이조성

 
경도 체류 중 첫날 오전 들리게 될 곳이 이조성二条城경도어소京都御所인데, 앞에서 보신 것처럼 두 곳은 현재의 경도 시내 중앙을 차지하며, 서로 인접지점이며, 나아가 최고 권력자의 독점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어소 남서쪽에 니조성이 있습니다. 

니조성은 지도를 보면 단박에 드러나지만, 동서남북으로 네모진 평면 방형方形인 성채로, 동서 폭이 남북 길이보다는 넓습니다. 전체 면적은 27만5천 평방미터이며 이 중 건축면적은 8천평방미터라는 자료가 있지만 어찌된 셈인지, 또 어디까지를 경계로 볼 것인지 하는 문제가 있는 듯한데 자료마다 규모에 차이가 적지 않다는 점은 염두에 두셨으면 합니다.

《일본성곽대계日本城郭大系11》(創史社, 1980)라는 책을 보면 외굴外堀, 곧 외곽 해자를 포함하지 아니하면 560 × 430m라 했습니다. 전체로 보아 방형이라 하지만 정사각형이 아니라 직사각형입니다. 

동쪽 성벽을 따라 북쪽에서 정확히 남쪽을 향해 굴천통堀川通(호리카와도리, ほりかわどおり)이라는 하천 혹은 인공해자가 흘러갑니다.  
 

이 도면에서는 북대수문이 보이지 않네요

 
앞 도면에 나타난 시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1.동대수문東大手門 2.번소番所 3.당문唐門 4.二の丸御殿車寄 5. 二の丸御殿遠侍·式臺·大広間 6. 二の丸御殿黒書院 7. 二の丸御殿白書院 8.二の丸庭園 9.蓬莱島 10.臺所 11.御清所 12.土蔵 13.便所 14.事務所 15.南門 16.桜の園 17.梅林 18.西門 19.本丸御殿 20.本丸櫓門 21.本丸庭園 22.天守臺 23.和楽庵 24.香雲亭 25.北大手門 26緑の園 27.展示·収蔵館

이를 보면 15번이 남문南門, 18번이 서문西門이라 이쪽에도 당연히 입출입 통로가 있었을 법한데, 후대에 어떤 연유로 그런 통로가 사라지지 않았나 합니다. 

지도를 보시면 이 이조성은 전체 외곽을 따라 해자를 설치하고, 그 안쪽에 다시 해자를 두른 방형 작은 성채를 볼 수 있는데, 본환어전本丸御殿이 있는 이 성채가 바로 이 성곽의 주축입니다. 이 성채는 해자를 뺀 순수 육지 지역만 동서 138 × 남북139m로 거의 정사각형입니다. 

성 바깥에서 내부로 향하는 통로는 동쪽 벽 남쪽으로 치우친 지점에 마련한 동대수문東大手門과 동쪽으로 치우친 북쪽 성벽에 마련한 북대수문北大手門 두 곳이 있음을 봅니다. 

전반으로 보아 방어에 치중한 성채임을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일단 유사시에는 저 안쪽에서 웅크린 채 막아보겠다는 심산이 드러납니다. 

 

이걸 보면 이조성이 이중의 방어체계를 구축했음을 봅니다. 저 안쪽 정사각형 해자를 두른 구역이 본환어전本丸御殿이라는 뎁니다. 경복궁으로 치면 근정전 정도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 성은 이름이 이조성인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평안경平安京과 평안궁平安宮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먼저 아래 그림을 보시죠. 이것이 평안경과 평안궁이 한창 번성할 때 그 구획도입니다. 
 
 

 
보다시피 남북으로 구획을 딱딱 나누었습니다. 마치 바둑판 같죠? 북쪽 맨 중앙에는 황궁이 위치합니다. 대내리大內裏라고 표시된 지점이 천황이 사는 곳이죠. 왜 북쪽 중앙인가? 저곳이 하늘로 치면 바로 북극성이 위치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곳에 서야 황제나 왕은 남쪽 태양을 향해 남면南面을 하게 됩니다. 

한데 저 구획을 보시면 동서 방향으로 황궁에서 차례로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숫자를 붙여 일조一条·이조二条·삼조대로三条大路라고 표시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조二条란 바로 저것을 말합니다. 이조성은 바로 평안경 구획 중에서도 이조대로에 위치한다 해서 저리 이름한 것입니다. 알고 보면 암것도 아닙니다. 

좀 더 컬러풀한 도면으로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현재 지형이랑 옛날 평안경을 겹친 지도를 볼까요?

 

 

이조성이 그 옛날 평안경 시절 황궁 동남쪽 지점, 곧 이조대로二条大路가 지나는 지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내친 김에 대내리라는 황궁도 좀 볼까요?
 

이것도 역시 정사각형에 가까운 방향으로 구획했으며, 동서남북 각 성벽마다 3개씩, 모두 9개 성문이 있음을 봅니다. 남쪽 정중앙 주작문朱雀門이라는 데가 남대문입니다. 경복궁으로 치면 광화문입니다. 그 주작문 앞으로 남쪽으로 큰 도로가 펼쳐지는데 이를 주작대로朱雀大路라 합니다. 

왜 남대문이 주작문일까요? 음양오행설을 알면 싱겁기 짝이 없습니다. 두 가지 혹은 다섯 가지 서로 상반 혹은 보합하는 에너지를 우주삼라만상을 지배하는 원리로 설명하는 논리가 음양옹행설인데 저에 의하면 남쪽은 태양이 가장 높이 떠오른 한낮이라 색깔로는 붉은색 계절로는 여름을 배치합니다.

그래서 동물로는 붉은 벼슬이 인상적인 주작을 갖다 놓고 주작문이라 한 것입니다. 경복궁은 왜 광화문과이化門인가? 빛 광은 바로 태양이며 색깔은 이글거리는 태양의 바로 그것입니다.

태극전은 경복궁으로 보자면 근정전입니다. 사극을 보면 근정전 같은 데서 걸핏하면 임금이 신하들 줄세워 놓고 국정을 논하는 장면을 나오는데 새빨간 거짓입니다. 저런 데서는 국가의 중요한 의식만 치렀지, 온돌도 없는 저런 데서 어디 임금이 국정을 논한답니까? 보통 국정은 그 뒤편 냉난방 장치 확실한 데서 했습니다. 

태정관太政官이라 표시된 곳은 조선으로 치면 의정부라고 보시면 됩니다. 저 중에서 태극전 구역만을 떼어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둘 다 주작문 쪽 남쪽에서 북쪽을 바라본 배치입니다. 

미안합니다. 여행 치고는 공부를 너무 많이 했습니다. 제가 흥분해서 그랬습니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이조성을 증언하는 진짜 사진들을 첨부안했군요? 정신머리가 제가 이래요. 유감스럽게도 경도는 아주 여러 번 갔지만, 이상하게도 이조성과 저는 인연이 없어 현장 가서 보시는 걸로...

 
2-3-1-2 역사  

이조성二条城은 にじょうじょう(니조조)라 하거니와 평지성으로 한때는 천황이 잠시 머무는 이궁離宮이기도 했던 까닭에 현재 정식 명칭은 원이궁이조성元離宮二条城(모토리큐이조조, もとりきゅうにじょうじょう)라 합니다. 일본어에서 고유명사 앞에 수식어로 쓰이는 元은 fomer이라는 뜻입니다. 

이곳을 무대로 시대를 주름잡은 가문으로 족리씨足利氏 세전씨織田氏 풍신씨豊臣氏 덕천씨徳川氏가 있다 하나, 현존하는 주요 전각이나 배치는 당연히 마지막 주인이었던 덕천씨 도쿠가와 가문이 남긴 그것입니다.

이조성은 경장慶長 6년, 1601년 5월에 마침내 최후 결전을 통해 대권을 쥔 덕천가강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가 에도, 곧 동경에서 상경해서 숙소로 쓸 곳으로 건설을 명함으로써 모습을 드러냅니다. 문제는 돈! 덕천은 지가 부담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돈께나 있는 대명 다이묘大名들한테 다 떠넘깁니다. 아주 좋죠? 

이듬해 본인이 집무할 어전御殿과 일본성 하면 떠오르는 탑 같은 높다란 상징 건축물인 천수각天守閣 건설에 착수하고 1603년 3월에 낙성을 봅니다. 다만 천수각은 딴 데서 뜯어와 새로 세우는 바람에 좀 늦어져 1606년에 문을 엽니다.

이곳에서 그는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에 책봉된 일을 기념하는 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입니다. 이것이 관례가 되어 그의 뒤를 이은 후손들은 으레 이곳에서 그런 의식을 치릅니다. 

1750년에는 낙뢰에 천수각이 소실되고, 이후에도 화재 피해를 본 모습으로 막말로 치닫습니다. 1860년에는 경도 일대를 덮친 지진에 막대한 피해를 다시 봅니다. 

1867년 10월에 대정봉환大政奉還이 이뤄지면서 이조성二条城은 막부와의 관계를 단절합니다. 이듬해 명치유신이 공식 확정됨에 따라 이조성은 천황 손아귀로 넘어갑니다.

1870년 동경으로 천도함에 따라 이조성은 유수관留守官 관할로 넘어갔다가 이듬해에는 그 주축 건물인 二の丸御殿은 경도부京都府 청사가 되며, 1873년에는 육군성으로 넘어갑니다. 1884년 궁내성 소관으로 넘어가 이조이궁二条離宮이라 일컬어집니다. 이궁이란 천황이 외박할 때 머무는 곳입니다. 

1915년 대정大正 천황 즉위 때 향연장으로 쓰였으며, 1939년에는 아예 경도시京都市로 소유권이 넘어가고 1940년 일반 공개가 됩니다. 절대권력의 상징이 시민사회의 공유물로 이동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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