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2 역사
먼저 이 얘기를 하기 전에 다시금 평안경平安京 시대 평안궁平安宮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기왕이면 현재의 경도어소京都御所가 함께 표시된 지도를 봐야 합니다. 아래가 그것입니다.
오른쪽 상단에 현재의 어소가 있습니다.
현재의 경도어소와 평안경 시대 평안궁을 비교해야 하는 까닭은 그것이 천황의 황궁 선후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일본이 경도京都로 천도한 이래 초반기 한동안, 대략 600년 간 황궁은 저 평안궁이었다가 우리네 고려시대 후기인 14세기에 접어들어 지금의 경도어소로 황궁 자리가 옮겨졌습니다.
천황이 상시로 거주하는 공간으로서의 황궁 자리를 경도어소는 명치시대에 에도, 곧 지금의 동경에 내주고 마는데, 이로써 본다면 경도어소가 황궁으로 기능한 기간은 대략 500년입니다. 따라서 황궁 자리로 본다면 경도 시대 천년 혹은 천백년은 절반을 툭 잘라 그 이전은 평안궁, 후반은 어소 시대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일본사에서 경도시대, 저 정확히는 평안경 시대는 연력延暦 13년 794년 10월 22일에 개막합니다. 그 이전 왕경은 어디였을까요? 장강, 곧 나가오카長岡 라는 곳입니다. 그렇다고 장경과 당시에는 평안平安이라 일컫는 지금의 경도까지 거리가 멀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엎어지면 코 닿을 만한 뎁니다. 지도를 볼까요?
요로케 이사간 겁니다. 약간 동쪽으로 치우친 북쪽으로 곧장 이삿짐센터 불러서 옮아갔습니다. 천도를 추진한 사람은 믿거나말거나 제50대 천황이라는 환무桓武입니다. 이 분 변덕이 죽끓듯 했는데 주특기는 이삿짐 싸기입니다. 우리처럼 여행병이 걸핏하면 도집니다.
경도 천도 이전 도읍을 장경이라 하지만, 이 장경도 황궁 역사가 고작 10년에 지나지 않습니다. 환무는 784년 11월 11일에 지금의 나라 나량奈良에 있던 평성경平城京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느닷없이 나 간다 빠이빠이 하고는 장경으로 날랐지만, 어찌된 셈인지 이곳도 맘에 안 들었는지 이내 더 북쪽으로 옮아가 버립니다.
환무의 변덕 행보를 지도로 표시하면 이렇습니다.
삼단뛰기를 한 셈이죠? 북쪽을 향해 계속 올라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북극성 찾아 갔나 봅니다.
암튼 그의 변덕에 힘입어 평안시대가 마침내 개막합니다. 그가 만든 새로운 도읍 평안경平安京은 동서 폭이 약 4.5킬로미터, 남북 길이 약 5.3킬로미터였습니다. 앞서 봤듯이 북쪽 중앙에다가 자기 집을 마련하고는 그 집 남대문 주작문에서 남쪽으로 죽죽 이어지는 주작대로朱雀大路라는 길을 내놓고는 북쪽에서 태양을 바라보며 만인 위에 군림합니다.
오른쪽 왼쪽을 요새는 바라보는 사람 기준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데, 항상 내가 아닌 주인공을 기준으로 따져야 합니다. 전통시대에는 항상 북쪽 중앙 북극성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이 주인입니다. 그를 기준으로 오른쪽 왼쪽을 따져야 합니다. 왕국의 주인은 왕이므로 이 왕이 북쪽 중앙에 선 위치로 좌우를 구분해야 합니다.
평안경은 황궁과 그에서 남쪽으로 뻗어나간 주작대로를 기준으로 왼쪽은 좌경左京이라 하고 오른쪽은 우경右京이라 했습니다.
어소는 본래의 황궁 자리인 평안궁에서는 1.7킬로미터 동쪽 지점에 위치합니다. 본래의 황궁이 화재로 소실하자 이쪽으로 옮기게 되는데 그때가 남북조시대인 1337년 9월 26일입니다.
당시 권력은 북조와 남조로 갈라졌는데, 이곳에 북조北朝 두 번째 천황인 광명光明이 거주하게 됩니다. 이후 명치 시대에 에도 동경으로 천도할 때까지 대략 530년간 황궁 기능을 합니다.
유의할 대목은 어소 시대 천황은 또 말씀드리지만 꿔다논 보릿자루 상징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실권은 전연 없었고, 그냥 쇼군이 하자는 대로 하는 꼭두각시였습니다.
족리의만足利義満 시대에도, 세전신장織田信長 시대에도, 그 유명한 풍신수길豊臣秀吉 시대에도 천황은 저짝에서 유폐생활을 했습니다. 쇼군한테 달라들지 않는 한, 대접은 제대로 받았으니 룰루랄라 탱자탱자하는 편안한 삶이었습니다. 일은 하나도 안 하고 월급은 따박따박 챙겼습니다. 권리만 있고 책임은 전연 없는 자리, 그 자리가 천황입니다.
그러다가 천황으로서는 골치 아픈 국면에 직면합니다. 지는 가만 있는데 느닷없이 쿠데타로 집권한 친구들이 찾아와서는 폐하 우리가 막부를 타도했으니, 오늘부터 진짜 왕이 되소서 하는 사태에 직면하니 이것이 바로 명치유신이었다. 이제 권리만 아니라 책임까지 져야 하니, 이 얼마나 골치 아픈 일일까요?
애초 이곳에 있다가 엎혀서 진짜 왕이 되고는 또 강제로 에도 동경으로 옮겨간 천황 명치는 1877년, 어소를 방문하고 그 황폐한 모습을 보고는 "아이고 이걸 우째?" 하고는 "본래 면모를 회복하라!"고 궁내성에 지시하게 됩니다.
이걸로는 삥 뜯을 공무원들이 안심이 안 됐는지 나중에는 잎으로는 천황 즉위식과 대상회大嘗会를 경도에서 하겠다는 칙령을 발표했습니다. 아마 그렇게 안 되었을 걸요?
2차대전 때 경도는 막대한 공습 피해를 보고, 그에서 어소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돌아볼 곳이 많아 어소 이야기는 이걸로 땡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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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서지방 여행 (5) 경도어소京都御所, 꿔다논 보릿자루 천황의 유폐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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