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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관서지방 여행 (5) 경도어소京都御所, 꿔다논 보릿자루 천황의 유폐 감옥

by taeshik.kim 2023.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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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 경도어소京都御所

2-3-2-1 개황 

다음에 들를 곳이 경도어소라는 곳이라, 이 명칭으로만 봐도 이곳이 경도京都가 도읍인 시절 천황이 머물던 황궁 자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어御라는 말이 꼭 천황 만이 아니라 쇼군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御라는 말은 넘버 원이라는 뜻입니다.

일본사에서 御가 모름지기 천황 만이 아니라 쇼군까지 포괄하게 된 연원은 하늘에 두 태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명목상 태양은 천황 한 가지나, 앞서 말했듯이 일본사를 통괄하면 이 천황만큼 불쌍한 존재도 없어 만세일계万世一系라 해서 일본 황실은 초대 신무神武 이래 현재의 나루히토 덕인徳仁에 이르기까지 126명이나 되는 천황 일족에 의한 승계가 죽죽 단절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개소리에 지나지 않고, 또 그나마 이 친구들은 꿔다논 보릿자루가 많아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중에서 내려다본 어소. 아래에서 자세히 살피겠습니다.

 
앞서 경도는 794년인가 이래 명치유신에 이르기까지 대략 천년간 황궁이 있던 자리라 했지만, 저 천년 대부분 천황은 꿔다논 보릿자루 허수아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실권은 쇼군이라 일컫는 사람한테 가 있었습니다. 그럼 이 시대 천황은 뭐 했는가? 도장 찍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도장만 찍습니다. 

쇼군 쇼군 하니 뭐 대단한 듯하고, 그 무거운 철갑 뒤집어쓴 위대한 존재 같지만, 이 역시 불쌍하기 짝이 없어 언제나 자객이 들이칠지 몰라 전전긍긍했습니다.

쇼군? 암것도 아니라 장군將軍에 대한 일본어 발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 정확히는 우리가 아는 쇼군은 에도시대 그것인 경우가 많은데, 그가 꿔다논 보릿자루한테 받은 명칭은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입니다. 오랑캐를 정벌한 장군입니다. 오랑캐? 대개 이 경우 오랑캐는 혼슈 북쪽 에미시를 말할 뿐입니다. 무슨 오랑캐? 

경도어소京都御所를 일본어로는 교토고쇼きょうとごしょ라 읽습니다. 앞서 여러 번 본 대로 현재의 경도 시내 중심가를 차지하는데, 1331년 이래 명치유신 직후인 1869년까지 천황가 궁전입니다.

앞서 본 이조성二条城이 에도 동경에 머물던 쇼군이 꿔다논 보릿자루 얼굴 잠깐 본다 상경할 적에 잠깐 이용한 별장처럼 운영한 데 견주어, 이곳은 천황이 유폐생활하던 공간입니다. 

 

우리한테 익숙한 남북 중심축을 동서 방향으로 돌린 모습입니다. 보니 오른쪽이 남쪽입니다.

 
지금의 어소 얼개는 1855년 완성한 그것을 토대로 삼습니다. 관할은 천황가 살림살이를 전담하는 궁내청宮内庁에서 하며 구체로는 그 경도사무소京都事務所가 합니다. 이는 이곳이 천황가 개인 재산이라는 뜻입니다.

에도 막부를 타도한 사쓰마 촌놈들이 막부에 대한 증오가 대단해 집권하자마자 그 상징물인 이조성을 격하해 마침내 나중에는 관광업소가 된 데 견주어 명치유산과 더불어 실권을 겨우 회복하는 모양새를 취한 천황가는 당연히 그 권위를 높인다는 차원에서 어소와 같은 데는 당연히 신성화하는 조치를 취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경도어소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안정安政 2년, 1855년에 조영造営한 것이라, 그 규모 혹은 면적은 어디를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수치가 다릅니다만, 이상하게도 가장 기본적인 정보인 이조차 발견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만 우선 그 모양을 공중에서 내려다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것이 2020년 촬영이라 해서 위키피디아에서 공개한 것인데, 보다시피 남북으로 길쭉하고 동서는 폭이 상대적으로 좁습니다. 동쪽 일정한 지점 떨어진 곳을 따라 북쪽에서 남쪽으로 강 하나가 흐르는데 이것이 앞서 본 대로 압천鴨川입니다. 오리가 많아서 압천인지는 모르겠고, 또 그 물길이 자연으로는 저리 날 수가 없어 지금의 서울 청계천 모양으로 인공으로 다듬었음을 엿봅니다. 

유의할 점은 저 모습 저 경계가 본래의 어소 그것인지는 단언하지 못하겠습니다. 아마 더 넓었겠지요?

아무튼 각종 자료를 보건대 저 황궁은 남북 길이 450미터에 동서 폭 250미터 길쭉이라 합니다. 이리 되면 전체 면적은 11만3천500제곱미터, 3만4천90평입니다.

1962년 담교신사淡交新社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경도어소京都御所》라는 책자에서는 실측자료를 토대로 했다면서 "축지병築地塀(담장) 외곽을 기준으로 할 적에 남변南辺 237.6m, 서변西辺 445m, 북변北辺 232m, 동변東辺 442m(p159)라 했으니 당시까지만 해도 정확한 직사각형은 아닙니다. 19세기에 아마 이를 지을 적에 신경질난 측량사가 저리 불일치를 조장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른쪽이 남쪽, 아래가 서쪽입니다.

 
궁내청에서 제공하는 경도어소 평면도입니다. 
 

 
이를 보면 전체 담장으로 둘러친 어소 구역으로 통하는 문은 남쪽 건례문建禮門을 남대문으로 삼아 동쪽 벽에는 건춘문建春門 하나만 남쪽으로 치우친 지점에 나 있고, 서벽에는 남쪽에서부터 의추문宜秋門, 청소문淸所門, 황후문皇后門이 차례로 나 있으며, 북벽에는 정중앙에 삭평문朔平門 하나만 나 있음을 봅니다. 

이는 그랜드디자인에서는 벗어난 변칙입니다. 본래 동아시아 건축 그랜드 디자인을 보면 동서남북이 대략 길이가 일치하는 정사각형에 가까운 방형方形입니다. 나아가 문은 각 방향에 세 개씩을 만듭니다. 하지만 남북 길이를 길게 하고 동서 폭을 좁히는 바람에 남쪽과 북쪽에다가는 정중앙에 꼴랑 하나씩 만들었고, 나아가 같은 길이임에도 서벽과 동벽은 심각한 불일치를 보입니다. 

서벽에 세 개를 만들었듯이 동벽에도 세 개를 만들어야 하나, 꼴랑 하나로 만족했습니다. 돈이 부족해서였거나 아니면 관급 공사에서 떼이는 게 많아서 설계하는 친구가 야마 돌아 저리했을 겁니다.

건춘문과 의추문은 볼짝없이 서로에 대한 대칭이라 그것이 설치되는 지점은 동서 방향으로 정확히 마주봐야 하는데 보다시피 어긋나 있습니다. 

동아시아 왕궁은 또한 동서 방면으로 정중앙을 관통하는 선을 그어 그 전면에는 왕이 공식 집무하는 공간으로 삼고, 그 뒤는 그의 사생활 구역으로 삼습니다.

남대문에서 가까운 마당이 사랑방이라는 남성 중심 공간임에 견주어 뒤는 안채라 해서 여성 구간으로 설정합니다. 이 안채에 남자는 오직 섹스와 후손 생산을 위해 들어갑니다. 물론 잠도 안채에서 잡니다. 사랑방에서 아를 만들기는 곤란합니다. 손님도 많은데 말이죠.
 
동아시아 왕궁 구조를 그리면 그랜드디자인은 이렇습니다.

 

 

앞쪽 남쪽이 공公의 영역, 남성 영역이고 그 뒤편이 안채로 사私의 영역, 여자가 주인인 곳입니다. 저 공과 사를 가르는 경계선 중앙에 그 왕궁 메인빌딩이 정좌합니다. 경복궁을 예로 들면 근정전 자리입니다. 

최고 존엄은 전체로 보면 중앙을 차지합니다만, 공공의 영역만 국한하면 맨북쪽 정중앙입니다. 왜 그런가? 이곳이 바로 북극성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북극성이 정좌하는 공간이 자궁紫宮이라는 사실은 앞서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아! 왜 북극성 왕궁을 자궁이라 해서 보랏빛을 쓰는가 궁금하실 수 있겠습니다. 어찌된 셈인지 옛날 우리 조상님들은 북극성이 내는 빛을 보라색이라 생각하셨습니다. 아마 2등성 3등성밖에 되지 않아 붉은색 천지인 1등성에 견주어 그리 생각하신 듯합니다. 

저 그랜드디자인에 견주어 경도어소를 보면 어쩐지 촌티가 줄줄 납니다. 만들다 만 그런 느낌말입니다. 제대로 된 건축물 혹은 건축배치가 아닙니다. 물론 이를 변형이라 보면 할 말이 없지만서두요. 저 그랜드디자인에 맞추긴 했습니다만, 촌티 나게 대강만 맞추었습니다. 

무엇보다 정전正殿이 너무 앞쪽으로 내려와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막부에서 일부러 그런 듯합니다. 천황 엿먹인다고.

이제 성채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편의상 남쪽 대문 건례문을 통해 들어가겠습니다. 

 

 

이 친구가 건례문인데 보다시 꽝 닫아놨습니다. 왜 건례문이 남대문인가? 일본 도성 혹은 왕궁 체제와 우리의 그것이 왕청나게 다른 점 중 하나가 나성羅城이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우리는 나성을 만들고, 다시 그 안 북쪽 중앙에다가 왕궁을 만듭니다. 하지만 일본은 이 나성이 없습니다. 나성으로 대표적인 곳이 한양도성입니다. 

하지만 이 나성을 알면 저 일본 왕궁 체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왕청나게 됩니다. 저 왕궁 남대문은 건례문建禮門이라 했으니, 이는 한양도성 남대문은 숭례문崇禮門이라 한 발상과 실은 똑같습니다.

앞서 음양오행설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이 요망한 개똥철학이 나중에는 유교 윤리와도 결합하게 되는데, 복잡할 것 없이 유교가 내세우는 5대 원리, 곧 仁義禮智信을 각각 오행과 짝을 맞추게 됩니다.

이에 의해 남쪽 붉은색 태양에 배치된 짝이 禮입니다. 그래서 대문에 禮가 들어가면 아! 남대문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동쪽은요? 한양도성 동대문 정식 이름은 흥인지문興仁之門입니다. 그래요, 仁이 들어가면 동쪽입니다. 참 쉽죠? 

 

삭평문도 닫아놨군요

 
내친 김에 어소 동대문을 건춘문建春門이라 해서 봄 춘자를 쓴 이유는 동쪽이 해가 뜨는 곳이라 계절로는 봄을 갖다 댔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그 반대편 서쪽에다가는 秋가 들어간 대문 이름을 지어야겠지요? 어소에서는 의추문宜秋門인 이윱니다. 더 쉽죠? 

북문을 삭평문朔平門이라 한 이유는 朔이라는 말이 바로 북쪽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삭평이란 글자 그대로는 북쪽이 평안하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황후문은? 말씀드렸듯이 뒤채가 황후가 주인인 곳입니다. 그래서 황후는 뒷문으로 출입합니다. 삭평문 대신에 북쪽으로 치우친 서쪽 벽에다가 대문 설치하고는 황후문이라 한 것입니다. 아마 북문으로는 다른 관리들이 출입하는 까닭에 황후문을 따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황후문인데 어쩐지 을씨년합니다.

 
청소문淸所門은 좀 이상합니다. 이런 명칭은 저로서는 생소합니다만 이유가 있겠지요? 
 

자신전

 
바로 앞 사진이 자신전紫宸殿이라 해서 정전입니다. 경복궁의 근정전에 해당합니다. 저기서는 국가 중요 행사를 하는 이벤트 홀입니다. 꿔다논 보릿자루 천황한테 뭐 국가 공식행사라 해 봐야 즉위식이라든가 쇼군 임명식 정도밖에 더 있겠습니까? 

왜 정전을 자신전이라 해서 굳이 보라색을 말했는가? 앞서 누차 말씀드렸습니다. 북극성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국가 주요 행사에 저 앞마당에 우리 같으면 문반무반이 도열했겠지만 꿔다논보릿자루한테 이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이걸 다시 보시면 자신전 구역은 또 하나의 담장으로 둘러친 구역임을 엿봅니다. 서쪽으로 치우친 지점인데 이거 천황 엿먹인다고 저리 만들었습니다. 경복궁의 경우 근정전 구역으로 입성하기 위해서는 흥례문 권역을 통과해 들어가고 다시 근정문을 통해 입성하는데, 그와 똑같은 발상입니다.

저 미니어처 구역 남대문이 승명문承明門이고 동대문이 일화문日華門, 반대편이 월화문月華門입니다. 북문은 없네요?

왜 남대문에다가 明이라는 글자를 썼을까요? 주작문 혹은 광화문과 똑같아서 이 경우 明은 바로 태양입니다. 동문을 日, 서문을 月이라 한 까닭은 동쪽과 서쪽은 서로에 대해 남성과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관장하는 천체 중 태양은 낮, 달은 밤을 관장합니다. 해는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집니다. 이 발상을 알면 왜 저런 명패를 달았는지가 실로 자명합니다. 

 

이 친구가 승명문. 아따 뺑끼칠 잘 해놨다.

 

어좌御座

 
꿔다논 보릿자루가 아주 가끔씩 앉는 자리입니다. 저와 매우 흡사한 우리네 모습이 부처님 정수리 위를 바치는 닫집입니다. 그 발상과 똑같습니다. 
 
어째 상여 같기도 합니다만, 뭐 자리는 한편으로는 감옥이니 그럴 법도 합니다. 

이야기가 길어져서 이만 줄이고자 합니다. 암튼 이 정도만 봐도 동아시아 권력 최중심을 우리는 정곡을 찔러 제대로 판 셈입니다. 좋은 가이드 만나섭니다.

다음으로 역사를 볼 차례인데, 갈수록 이야기가 길어져 무지 죄송합니다. 잘난 척 하려는 마음이 점점 더 크게 들어서이니 그런갑다 하셨으면 합니다. 

 
2-3-2-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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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서지방 여행 (4) 이조성二条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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