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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관서지방 여행 (3) 교토京都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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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교토京都 

2-2-1 개설 


교토시 · 일본 교토부

일본 교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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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본국 수도를 동경東京이라 하는데, 잘난 척 한다고 도쿄라 읽지만, 실은 이렇게 읽어서는 그 본래하는 의미가 좀처럼 드러나지 않으니 실상은 동경이라 읽어야 합니다. 왜?

동경은 글자 그대로 동쪽에 있는 도읍인 까닭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도쿄를 동경으로 밀어낸 주체는 어디인가? 하는 의문이 일어납니다. 그곳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교토, 아니 더욱 정확히는 경도京都입니다. 

이 교토 역시 도쿄가 그렇듯이 교토가 아니라 경도라 읽어야 합니다. 왜 그런가? 경도라는 말 자체가 도읍, capital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京이건 都건 같은 말인데, 이는 결국 역전앞과 같은 발상이라, 이 도시가 차지하는 위치가 그만큼 막중하다는 의미입니다. (단, 京에는 大라는 뜻이 있어 경도는 큰 도시라는 말일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경도 그 자체가 도읍이라는 뜻이니, 이곳이야말로 진짜 일본국 수도입니다. 동경이 동경인 까닭은 바로 이 경도를 기준으로 동쪽으로 있는 까닭입니다. 아래 지도를 보면 경도와 동경, 그 상대적인 위치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2-2-2 천황天皇과 어소御所

그렇다면 경도란 무엇인가? 王이 있는 곳입니다. 왕이 상시로 거주하는 왕궁이 있는 공간이며, 그 왕궁을 둘러싼 도시, 곧 도읍이 있는 곳입니다. 

 

경도어소 京都御所 건례문建礼門이라 하니, 숭례문에서 보듯이 禮라는 말이 들어가면 남대문이다.

 
일본의 왕이 바로 천황天皇입니다. 천황이라고 하면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이 많아 요새는 천황이라는 말이 싫다 해서 일왕日王이라는 말을 씁니다만, 이토록 역사를 왜곡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일본 왕은 천황입니다. 천황은 천황으로 불러야 합니다. 

그렇다면 천황이라는 말은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하늘의 별자리 중에서도 오직 제자리를 지키며, 나머지 뭇별이 그를 따라 도는 그 중심 별자리 북극성을 말합니다.

그 북극성을 도교에서 천황 혹은 천황대제天皇大帝라 하며, 그가 사는 궁전을 자궁紫宮이라 하는데, 이 천문우주관이 지상에 그대로 투입되어, 지상의 군주 또한 천황이라 하고, 그가 사는 궁전을 자궁이라 하는 겁니다.

중국 명청시대 황제가 사는 곳을 자금성紫禁城이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자금성은 자궁紫宮과 금궐禁闕을 합친 말로, 일반인 출입은 함부로 할 수 없다는 뜻을 가미한 것입니다. 

 

경도어소京都御所 위치

 
일본에서는 현재 천황의 궁전을 보통 어소御所라 부르는데, 御라는 말은 어용御用이라는 말에서 엿보듯이 권력, 특히 최고 권력을 의미하니, 어소란 결국 최고 권력이 거주는 곳[所]이라는 뜻입니다. 이 어소는 현재는 동경에 있습니다만, 동경 이전에는 바로 경도에 있었습니다. 

다만, 동경 이전 경도에 존재한 천황 궁전을 지금은 동경의 그곳과 구별하고자 경도어소京都御所라 하는데, 이곳은 남북조시대 권력을 양분한 한 쪽인 북조北朝 시대 광엄천황光厳天皇 이후 명치천황明治天皇에 이르기까지 역대 천황이 거주한 공간입니다. 지금도 천황 자리인 고대좌高御座가 있습니다. 

황후가 거주하는 공간이 따로 있어 경도대궁어소京都大宮御所라 하는데, 지금은 쇠락해서 숙박업장으로 씁니다.

천황이 뭐 대단한 것처럼 여기지만, 실상 천황만큼 불쌍한 존재도 없습니다. 천황? 허울만 그럴 듯하지 실상 꿔다놓은 보릿자루입니다. 물론 한때는 절대권력을 자랑했습니다만, 개털이 되어 신하들한테 권력을 다 빼앗기고 자리만 덩그러니 지켰을 뿐입니다. 상징천황? 말이 좋아 상징이지 개털왕입니다. 

 

경도어소京都御所와 이조성二条城. 이 두 곳은 추후 자세히 다룬다. 주목할 점이 오른편(동쪽)을 따라 남북 방향으로 압천鴨川이라는 강이 거의 수직으로 흐른다는 사실이다. 강이 저리 흐를 수는 없다. 인공으로 물길을 저리 만든 것이다.

 
막부시대 이래 죽 그랬습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천황 신경이나 쓴 줄 압니까? 개털 취급했습니다. 너는 그냥 자리나 지켜 하고는 골방에다 쳐박아 두는데, 그 골방이 바로 어소입니다. 얼마나 개무시했는가 하면 이에야스는 아예 넌 교토에 살아, 난 딴 데 가서 정치할 테니 하고 날라버리는데, 그 날라버린 데가 바로 동경입니다. 

도쿠가와가 권력을 잡은 시점이 1600년, 그렇게 시작한 동경 에도막부가 267년 뒤인 1867년, 마침내 막을 내리는데 이를 명치유신이라 합니다.

명치유신은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혁명인가? 꿔다놓은 보릿자루 천황을 다시금 권력 정점에 세운 까닭입니다. 그렇게 해서 천황은 마침내 근 800년 만에 권력을 되찾습니다.

 

야후저팬 위성지도로 살핀 경도어소
경도어소 모형

 
하지만 유의할 점은 이 권력을 스스로 찾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지는 가만 있는데, 지를 오야붕으로 섬기겠다는 규슈 촌놈들이 느닷없이 에도막부를 끌어엎어버리고는 당신 이제부터 진짜 천황 하시오 해서 그렇게 엎혀서 됐습니다. 

그러니 명목상 권력을 되찾았다 하지만, 천황은 여전히 꿔다논 보릿자루였고, 실제 권력은 내각이 틀어쥐었습니다. 천황은? 내각이 결정한 것을 도장만 찍어줬을 뿐입니다.

천황더러 과거사를 반성하라? 웃기는 소립니다. 꿔다논 보릿자루가 무슨 과거사를 반성하며 무슨 책임을 진단 말입니까? 일본국 헌법 보십시오. 천황이 책임을 질 수 없습니다. 허수아비더러 구실을 하라는 한국이 얼마나 천황은 고맙겠습니까? 

 

후제호천황後醍醐天皇, 고다이고텐노(1288~1339). 꿔다논 보릿자루
後醍醐天皇. 저런 친구가 뭐 할 일이 있겠는가? 놀고 즐기는 일밖에 더 있겠는가?

 
2-2-3 평안경平安京과 경도京都의 성립
 
흔히 경주에 비겨 일본에서는 나라를 일본의 경주라 하지만, 천년 수도라는 역사성에 견주어 그에 견줄 곳은 나라가 아니라 실은 경도입니다. 

우리 역시 꼭 같은 왕조가 여러 번 수도를 옮긴 경우도 있지만(고구려 백제가 대표적), 일본은 훨씬 자주 툭하면 옮겨다닌다는 점에 특징이 있습니다. 자주 옮기게 되니, 그만큼 신도시 건설에 적지 않은 물자와 인력이 소요하며, 그럼에도 자주 옮기면 장점이 있습니다.

 

이것이 현대 고고학이 복원한 평안궁 조성 당시 모습이다. 실제가 저랬는지는 알 수 없다.
평원궁 주요 전각 배치가 이랬을 것으로 본다.
평안경 도시계획도다. 이런 바둑판식 구획이 가능한 이유는 첫째 이곳이 평야지대이며, 둘째 신도시기 때문이다. 구도심에서 저런 구획은 불가능하다. 왜? 토지 분쟁과 토지 수용비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첫째 바둑판 신도시 만들기가 가능하고, 둘째 이것이 더 중요한데 환경오염에서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수도는 그때나지금이나 인구밀도가 높은 곳이지만, 그많은 사람이 먹어대고 싸대는 데서 비롯하는 번다함과 오물처리가 골치였습니다. 그때 무슨 수세식 오물처리 시스템이 있었겠습니까? 그냥 싸대서 흘려보낼 뿐이었습니다.

자주 옮기는 이유 중에 환경오염이 실은 결정적입니다. 물론 코로나 사태 같은 전염병 예방도 이유로 작동합니다. 

일본은 어찌된 셈인지 몇 십년 만에 혹은 100년 만에 걸핏하면 새로운 왕궁을 지어 옮겨다닙니다. 경도 이전 일본 수도는 전통적으로 대판大阪 오사카와 나량奈良 나라이었습니다. 그것도 한 곳에 고정한 것이 아니라 같은 지역이라 해도 토끼뜀 하듯 폴짝폴짝 옮겨다닙니다. 무슨 궁宮으로 옮겼다는 기록이 일본사에서는 자주 보입니다. 

지금의 경도 지역도 본격적인 수도가 되기 전에 잠깐씩 왕궁이 없지는 않았지만, 본격적인 경도 시대 개막은 평안경平安京이라는 신도시를 조성한 서기 794년을 시발로 삼습니다. 이 새로운 수도를 평안경이라 하고, 그 궁전을 평안궁平安宮, 헤이안쿄 へいあんきゅう 라 합니다. 이렇게 시작한 경도 도읍 시대는 명치천황이 동경으로 거처를 옮기기까지 1천80년간 계속합니다. 그러니 경도는 천년 수도입니다.  

그 서막을 연 평안궁은 794년에 완공되어 1227년까지 400년 정도 천황의 궁전이었습니다.  이곳의 현재 위치는 대략 아래와 같다고 봅니다. 현재의 경도어소 서쪽, 이조성 북쪽에 해당합니다. 

 

 
 
저 평안궁이 화재로 폐기되고서도 경도는 평안平安시대를 거쳐 무로마치 막정시대室町時代, 가마쿠라 겸창시대鎌倉時代, 전국시대戦国時代, 안사도산시대安土桃山時代, 그리고 에도 강호시대江戸時代 말기까지도 천황의 궁전이 있던 곳입니다. 

그런 까닭에 경도라는 이름을 얻었으니, 가마쿠라 겸창시대에는 낙중洛中이라고도 했습니다. 중국의 대표적인 수도가 낙양洛陽이니 거기에서 따온 말입니다. 에도 막부시대에는 삼도三都 제제가 완비되어 동경인 강호江戸, 오사카 대판大坂과 더불어 경도가 당당히 개중 하나로 들어갑니다.

하나 아쉬운 점은 경도가 2차 세계대전 태평양전쟁에 집중 포화를 맞아 상당한 피해를 봤다는 사실입니다.

나아가 지금의 경도 중심부와 비파호 사이에는 산맥으로 가로막혔다는 사실도 유념해야 합니다. 이는 비파호를 통한 물자 수송에는 상당한 장애가 됩니다. 

 

 
 
2-2-4 비파호 

교토로 옮겨가 우리가 투숙할 호텔이 오코토 온천 비와코 그랜드 호텔 琵琶湖グランドホテル 입니다. 이 호텔을 따로 제가 소개할 필요는 없고 그것이 위치한 데를 지도에서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비와코 그랜드 호텔 · 6 Chome-5-1 Ogoto, Otsu, Shiga 520-0101 일본

★★★★☆ · 료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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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다시피 비파호琵琶湖 라는 내륙 큰 호수 남단 인접 지점이라, 이 호수를 잠깐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이 비파호는 보다시피 한자 표기가 琵琶湖라, 비파라는 악기에서 이름을 땄습니다. 일본어로는 びわこ 라 하고, 비와코라 표기합니다. 일본 내륙 호수 중에서는 면적이 669만 평방킬로미터로 가장 큽니다. 소유주는 일본정부이며 사가현滋賀県이 위탁 관리합니다.

대략 440만년 전에 형성됐다는 이 호수 최고 수심은 104.1미터라 하니, 빠지면 골로 갑니다. 남북 길이 63.49킬로미터에 달하며 폭이 가장 넓은 데는 22.8킬로미터입니다.

 

비파처럼 보이나요? 어째 기타에 가까운 듯도 하고

 
지금은 비파호琵琶湖라 하지만 옛날에는 여러 이칭이 있어 고사기古事記라든가 일본서기日本書紀 같은 옛날 문헌을 보면 근담해近淡海·담해淡海·담해의 바다淡海の海(あふみのうみ)·수해水海(すいかい)·근강의 바다近江の海·세파細波(さざなみ)·논병아리 바다 鳰の海(にほのうみ) 등이라고 일컬었습니다. 

비파호琵琶湖라는 이름은 무로마치室町 시대 말기에 속하는 1500년 무렵에 처음으로 나타납니다. 그 모양이 비파를 닮았다 해서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로 볼 때 비파호라는 이름은 어느 정도 현대에 가까운 지도 관념이 등장하면서 생겨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변에 발달한 습지

 
그 위치라든가, 물이라는 생명줄을 간직한 이 호수가 일본 역사문화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지는 두 말이 필요없을 것입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그 편린을 마주할 뿐이지만, 이 비파호만을 탐사하는 여행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 비파호에 대해선 아승기 전세 겁에 제가 쓴 글이 있으니 시간 나실 때 아래 일독을 권합니다.


2011-12-16 09:45
<비와호에 비친 일본의 불교미술>
국립중앙박물관 '일본 비와호 지역의 불교미술'展


https://www.google.co.kr/amp/s/m.yna.co.kr/amp/view/AKR20111216060800005

<비와호에 비친 일본의 불교미술> | 연합뉴스

<비와호에 비친 일본의 불교미술> 국립중앙박물관 '일본 비와호 지역의 불교미술'展

www.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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