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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광개토왕의 대업적은 왜 사서에 수록되지 않았을까

by 초야잠필 2024.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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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차사료"인 광개토왕비 내용 중
왜 삼국사기에 빠진 부분이 많을까. 

그것도 광개왕비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인 백제, 신라, 가야 방면의 남방원정은

완전히 그 내용이 빠져 있다. 

흔히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는 
그 기원을 따져 올라가면

고구려의 관찬사서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광개토왕비의 찬란한 업적은 

삼국사기에서 왜 대충 생략되어 있을까. 

이를 "일차사료"인 광개토왕비의 내용이 원래 사실이지만, 

삼국사기가 채록되는 과정에서 "누락"되었다고 보아야 옳을까. 

그런데-.

사실 이상한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일본서기에는 한반도 상황에 대한 기억이 불완전하나마 실려 있는데, 
"신라"를 쳐들어간 왜병의 기억은 있지만, 

개로왕대 함몰 이전 

고구려와 싸운 왜병의 기억은 없다. 

광개토왕의 남정으로 왜병이 초토화 하고 종발성까지 이르렀다면, 

어째서 왜에는 그 기억의 편린이라도 남지 않았을까. 

광개토왕의 남정 당시 
근초고왕의 기억도 잔편이나마 남아 있는 왜의 기록에 

어째서 아신왕이 고구려에 항복한 사건이 전해지지 않았을까. 

가능성을 생각해본다면-.

뭔가 광개토왕이 남방 방면으로 작전을 한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것이 호태왕비에 기록된 것처럼

압도적인 사건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을수 있겠다. 

아신왕을 압박한 것은 사실이겠지만,

호태왕비에 기록된 것처럼 백기항복 수준이 아니었거나, 

신라에 원병을 한 것은 사실이겠지만,

고구려 기병이 신라군을 수병으로 삼아가며

가야까지 왜를 단독으로 쳐부수며 내려간 상황이 아니었거나 하는 것이다. 

신라가 왜에게 고생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적으로 고구려의 도움으로 이를 밀어낸 것이 아닐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광개토왕 남정이후 학계 통설처럼 
신라가 고구려의 속국이었다는 설이 사실일까. 

문제는-.

광개토왕 때의 거대했다는 남방원정은 

비문에만 기록되어 있을 뿐 사서에는 흔적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사건이라는 점이다. 


*** editor's note ***


그렇게 엄정한 사료비판을 내세우는 한국역사학계가 정작 국뽕 자랑 천지인 이 광개토비문은 논외로 친다는 사실이 신통방통할 뿐이다.

나는 이에서 강렬한 내셔널리즘을 본다.

그 강성한 내셔널리즘은 강성대국 고구려에 기반하며 그 강성대국 고구려 절대기반은 저 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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