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정독과 다독 이야기를 했다.
여담 삼아 스핀오프로 한 가지 이야기만 더 써 보겠다.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필자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교과서에는 별주부전이 있었다.
그 별주부전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왔다.
그 내용은 좀 길지만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자라 가로되,
"너는 우물 안 개고리라. 오직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도다. 자서(子胥)의 겸인지용도 검광에 죽어 있고, 초패왕의 기개세氣蓋世도 해하성에서 패하였나니, 우직한 네 용맹이 내 지혜를 당할쏘냐? 나의 재조才操를 들어보라. 만경창파 깊은 물에 청천에 구름 뜨듯, 광풍에 낙엽 뜨듯 기엄둥실 떠올라서, 사족을 바토 끼고 긴 목을 뒤옴치고, 넓죽이 엎디면은 둥글둥글 수박 같고 편편넓적 솥뚜깨라. 나무 베는 초동이며, 고기 낚는 어옹들이 무언지를 몰라보니 장구하기 태산이요, 평안하기 반석이라. 남모르게 변화 무궁 육지에 당도하여 토끼를 만나보면 잡을 묘계 신통하다. 광무군 이좌거李左車의 초패왕을 유인하던 수단으로 간사한 저 토끼를 잡아올 이 나뿐이라. 네 어이하여 나의 지모 모략을 따를쏘냐?"
이 문장이 그대로 인용되어 있었는데, 문제는 저 광무군 이좌거가 누구냐, 하는 부분이었다.
물론 중국사를 우리가 잘 모르니 중국의 명장인가? 초패왕이 항우라는건 알겠으니 아마 항우와 막상막하였던 명장이었나 보다. 라는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갔다.
나중에 사기를 통독할 기회가 있었는데 저 광무군 이좌거는 사실 별주부전에서 저렇게 이야기 할 정도로 굉장한 사람이었는지 좀 의문이었고, 무엇보다 광무군 이좌거는 사실 초패왕 때문에 역사에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한신이 북벌할 때 등장하는 인물이었다.
팩트도 의심스럽고 느닷없이 광무군이 자라의 입에서 유식한 문자풀이로 다루어지는 데 의문이 있었다.
나중에 이 문제는 우연찮게 왜 자라가 광무군 이좌거를 언급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통감절요를 가르치다가 대략 전한 초 문제-경제 시대 이야기를 읽을 때쯤이면
얘가 공부를 더 가르칠 만한 아이인지, 아니면 우둔한 아이라 더 글을 가르칠 필요가 없었는지 이때까지 문리가 터지는 것을 보고 짐작하여 결정했다는것이다.
그리고 애가 똑똑하면 통감은 거기까지만 읽고 다른 책으로 넘어갔고, 우둔한 아이라면 더 가르치지를 않으니 통감절요는 자기가 따로 전질을 독파하지 않는 한 스승으로부터 전수 받는 곳은 딱 거기까지였던 모양이다.
조선시대. 서당에 가서 통감을 읽어봤다고 하는 사람들은 딱 거기까지 읽은 사람이 태반이고, 그러다 보니 그 양반들이 읽은 부분에 나와 있는 광무군 이좌거는 천하 명장으로 기억에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는 것 아니었겠나?
물론 조선시대라고 해서 통감절요는 물론 자치통감 전질을 모두 읽어치운 사람이 없었겠냐마는, 대부분은 전한기 언저리에서 통감읽기를 중단했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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