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는 말이 있지만,
정독은 다독을 이길수 없다.
조선의 인문학이 에도시대 일본에게 뒤쳐진 이유이며,
인간 기사들이 알파고에게 패한 이유이기도 하다.
정독은 다독을 절대로 못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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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注 ***
필자가 인용한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은 독서를 백편 하면, 의義가 저절로 드러난다는 뜻이라, 이는 아무리 어려운 말 혹은 개념이라도, 두루 독서를 하다 보면 그 의미를 자연히 알게 된다는 뜻이다.
저 말이 우리 세대에는 고등학교 유일 국정교과서였던 국어 교과서에 수록한 양주동 선생의 기하幾何, 몇 어찌라는 글에서 인용함으로써 더욱 입에 착착 붙게 되었으니, 이 글이야말로 신학문을 접한 우리네 1세대에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우뚝하게 증언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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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에서 공부랄 것도 없는 형편없는 책들로 공부를 하던 무애 선생이 어찌하다 신식학교에 들어가 기하학이라는 학문을 접하고는 도대체 기하학이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의미를 종잡을 수 없어 여러 선생을 찾아다니며 물어 그 의문을 풀조자 하다가 어찌하여 수학 선생을 만나 기하학이 주는 묘미를 풀게 되었음을 유머를 곁들여 회고했으니
나는 저 말보다는 그가 인용한 다른 말, 곧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徹하도록 읽는다는 말이 뇌리에 깊이 남았다. 눈을 부라리며 종이를 뚫을 정도가 된다는 뜻이라, 신학문이 이 땅에 상륙했을 무렵 그것을 접한 신이한 눈길과 그것을 해명하려는 사람들의 쟁투가 지금에 와서는 눈에 더욱 더 선하며, 그래서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더 애처로이 본다.
단순히 꼰대 혹은 라떼라는 말로 치부할 수는 없는 눈물겨운 투쟁이었다.
필자는 조선시대에 자치통감이 중시되었다고 했거니와, 이 방대한 책을 통독한 사람조차 드물며, 그나마 읽었다는 통감은 주희가 팍팍 분량을 줄인 통감절요이며, 그나마 이 절요조차 제대로 읽은 사람이 드물다 했으니, 이는 실상 수학정석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이 수학정석은 앞대가리 집합과 명제만 새까맣고 이후 미적분을 지나 마지막 확률과 통계는 깨끗함이 보통이었으니, 앞대가리만 주구장창 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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