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광명최승왕경金剛明最勝王經
Transcription of Sovereign Kings of the Golden Light Sutra
1622
동국대학교 박물관
인목대비가 페위된 후 서궁西宮에 감혀있을 때 발원한 것으로 아버지 김제남金悌南, 어머니 노씨, 아들 영창대군의 극락왕생과 딸 정명공주의 장수와 자손 번성을 기원하였다.
사경을 발원한 다음해 인조반정으로 왕대비로 복위되었으며, 몇 해 후 수종사 석탑에 불상을 조성하여 안치하였다.
이상은 서울역사박물관이 한양여성 문밖을 나서다 특별전에 저 유물을 대여 전시하면서 내건 안내판이라
인목왕후仁穆王后 김씨金氏(1584~1632)는 조선 선조宣祖의 두번째 정식부인으로 슬하에 정명공주와 영창대군을 두었으니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그의 비극은 광해가 후궁 소생으로 이미 세자로 책봉된 마당에 계비로 들어와 왕자를 낳았다는 데서 싹텄다.
광해는 이복동생 영창을 살려둘 수 없었다. 그를 끼고 언제건 그 자신을 세자위와 왕위에서 끌어내리려는 음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왕세자 시절 이를 톡톡히 경험한 그는 왕이 되자마자 계축옥사를 빙자해 정적들을 일망타진하니 인목 아버지 연안부원군 김제남을 사사하고 아들 영창대군을 죽였으며 아주 그 가문을 박살냈다.
인륜상 어머니인 인목은 정명공주와 함께 경운궁 석어당에 유폐하니 죽이지 아니한 게 다행이었다.
이 일은 철저히 정치투쟁이었으니 너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사생결단이었다.
대비라는 칭호도 박탈당하고 그냥 서궁이라는 말만 남은 뒷간 퇴물이 분노를 삭이려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기도 뿐이었으니 하나는 광해 이 개자슥 쓉새라는 저주였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 자식 형제자매들의 극락왕생이었다.
여자가 한을 품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리는 법이다.
저 일로 흔히 광해를 욕하나 그가 당한 일을 보면 또 썩 그렇지만은 아니하니 아 어찌 볼 것인가 어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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