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인류문명이란 반드시 금속기의 도입을 수반하는 것은 아니다.
농업의 발전으로 생산력이 올라가면 금속기의 도입에 적당한 조건이라면 그것이 청동이건 철이건 간에 도입해서 쓰게 되겠지만 여의치 않은 조건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뭔가 변형스러운 모습의 문명이 발전할수 밖에 없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20세기 이전 전통적으로 구리가 귀한 나라였다.
조선시대도 만성적인 구리 부족현상에 시달렸으며 동전 주조할 구리가 모자라 일본으로 부터 수입도 많이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반해 주변국가인 중국과 일본은 상대적으로 구리 생산이 좀 넉넉하여 특히 일본 같은 경우는 막대한 양의 구리를 채굴, 제련하여 수출까지 했던 것으로 안다.
조선시대에 없던 구리가 청동기시대에는 넉넉했을 리가 없다.
고고학자가 아닌 필자로서는 억측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석검을 볼 때마다, 금속화폐가 모자란 남송에 출현했던 지폐를 연상한다.
시대를 정확히 추정할 수 있는 눈이 내게는 없으니 역시 무리스런 추단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많은 석검은 모자란 구리 대신 동원된 것이 아닐까 한다.
물론 최정점의 지배자들은 당시 이미 도입된 청동기로 폼나게 칼을 만들어 썼겠지만, 완연한 복합 사회로 접어들어 동네 수장들도 뭔가 폼나는 게 필요하긴 한데 구리가 없어 여의치 않으면 돌칼이라도 만들어 찰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렇게 본다면, 우리나라 청동기가 만기로 올수록 일본에서 역수입되는 것이 있었던 것도 이해가 간다.
광대화한 왜식 청동무기 같은 것은 구리 사정이 여의치 않은 한국 쪽에서는 쉽게 시도하기 어려운것 아니었을까.
청동기시대. 아마도 한국에서는 청동기 도입 후 구리 부족으로 충분히 개화하지 못하다가 철기시대로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금속기를 맘껏 쓰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광대화한 왜식 청동기물이 반드시 사람의 이동을 수반한것이었을까..
그것이 아닐 가능성도 있겠다는 생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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