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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국가유산기본법이 탑재한 함정들 by Eugene Jo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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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기본법이 시행을 앞두며 개최된 정책포럼 유튜브를 시청하다보니 궁금한 점이 해소되기도 하고 의문이 더 생기는 점도 생겨 들었던 여러 생각들을 그냥 한번 적어본다.

1. 가치 vs 속성
2. 재화의 개념, 자원의 개념
3. 계승과 전승의 차이

등등에 관심이 많은데 1번 쓰다 보니 너무 길어져서 2번 3번은 매우 소략함을 이해해줬으면 싶다.


1. 국가유산으로의 명칭 변경의 필요성과 그 타당성은 이해하기가 쉽다. 그러나 여태까지의 부족함은 변화를 위한 필요조건이고, 이에 얹어 앞으로 어떤 점까지 충족시킬 수 있는지 그 미래지향적인 의미에 대한 설명은 아직 제대로 자리 잡은것 같지 않아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

국가유산으로 변경되었을 때 아직까지 부처간 영역이 겹치거나 관리상의 문제가 되었던 자연유산/천연기념물 및 명승의 개념이 온전히 유산 개념 안에 포괄될 수 있기에 그것이 문화재청 입장에서 필요했던 점은 인정한다.

우리나라의 문화재 지정체계는 그동안 속성 기반 체계였다.

지정 사유가 생물학적 희소성을 갖는 학술적 이유에 기반을 두었든, 전통 문화의 면면을 보여주는 역사적 이유이든 간에 대상물이 건축물이냐, 도자기냐, 나무냐, 마을이냐에 따라서 그 분류가 사적, 민속문화재, 천연기념물 등으로 구분되었다.

그러나 이렇게만 있었으면 그나마 좀 간단했을 것을, 이러한 속성별 분류에 더해 거기에 더 중요한 '가치'를 가진 것은 보물이나 국보로 승격되는 이중 체계의 혼재였다.

그래서 이 분류를 정리하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고 정말 환영할 만한 발전이다.

그런데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간의 구분이 여전히 모호하다.

현재 공표된 법안 내 정의는 다음과 같다.


“문화유산”이란 우리 역사와 전통의 산물로서 문화의 고유성, 겨레의 정체성 및 국민생활의 변화를 나타내는 유형의 문화적 유산을 말한다.

“자연유산”이란 동물ㆍ식물ㆍ지형ㆍ지질 등의 자연물 또는 자연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조성된 문화적 유산을 말한다.



여기에서 자연유산의 정의를 살펴보면 가치와 속성이 혼재되어 있다.

구성 대상물이 동물, 식물, 지형 지질과 같은 자연물이기 때문에 자연유산으로 분류가 되는지, 아니면 자연환경과의 상호작용이라는 지정 사유에 따라서 자연유산으로 분류가 되는지 정의에서 둘 다 포괄하고 있다.

이는 세계유산협약 내에서 최근 10년간 가장 핫한 주제 중 하나인 가치와 속성 논의와 그 본질이 연결된다.

기본법에서 제시한 정의에 따른다면 자연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조성된 문화적 유산은 자연유산으로 지정된다.

그럼 특히 후원이 백미인 창덕궁도 자연유산이 될 수 있고 풍수지리적 원칙에 따라 입지가 결정된 전통마을들도 이에 모두 해당될 수 있다.

즉, 자연환경과의 상호작용이라는 가치가 중요해서 지정된 유산이라면, 그 자연적인 가치를 인정하여, 설령 대상물이 건축물이거나 일반 가옥이래도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유산에 대한 가치 기반 접근이다. 즉 Values based approach.

그러나 앞서 말했듯 우리나라의 문화재 지정체계는 그동안 속성 기반 체계로 운영되었고 그것이 자연유산 정의의 앞 부분을 여전히 형성하고 있다.

동물, 식물, 지형, 지질 등의 자연물. 즉, 지정 대상물의 형태에 따라서 자연유산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어느 마을의 당산나무가 민속적, 토속적, 우리 문화의 고유성을 온전히 보여주는 대상물이어도, 이는 ‘나무’이기 때문에 자연유산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포럼 내에서 이광표 교수님이 사례로 제기한 소쇄원도 이와 비슷하다.

다음은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나온 소쇄원의 문화재청 지정 사유이다.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 중기 정원 가운데 대표적인 것. 양산보(梁山甫, 1503∼1557)는 스승인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1482~1519)가 유배되자 세상의 뜻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정원을 지었는데, 면앙정(俛仰亭) 송순(宋純, 1493~1583)이 ‘맑고 깨끗하다’는 뜻의 ‘소쇄(瀟灑)’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중략) 우리나라 선비의 고고한 품성과 절의가 엿보이는 아름다운 정원으로, 조선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정원이다.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켰기 때문에 소쇄원은 자연유산인가, 아니면 우리 역사와 전통의 산물로서 문화의 고유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문화유산인가?

아니면 지정 가치는 자연적 가치나 문화적 가치 모두 다 인정되지만 정원이라는 대상물 자체가 자연물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자연유산으로 구분되어야 하는가?

언뜻 보면 말장난 같은 의미와 대상의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다음에 진행되어야 할 유산 보호 행위에 대한 기준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역시나 포럼 장에서 논의가 되었던 ‘원형’ 논쟁과도 연결이 되는데, 이는 과연 어느 기준에 맞춰서 유산의 보존관리 행위를 진행하느냐를 결정하는 밑바탕이다.

그동안 대상물 (속성) 중심으로 문화재보호법이 운영되어 왔던 우리나라에서는 ‘원형’이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특정한 형태와 종류의 대상물이 지정이 되고, 그것을 보호하는 것이 지정 목적이 된다면 당연히 대상물을 최대한 그 형태 그대로 보존하고 관리하는 것이 당면 과제가 될 수 밖에 없어서 대상물의 ‘원형’에 그 기준을 맞추는 것이 지속되어 왔다.

그러나 지정 사유, 즉 가치에 기반을 두는 체계로 변화하게 되면 대상물이 어떤 형태를 띄는 것이 중요하기보다는 애초에 지정을 했던 그 이유, 사유가 더 잘 보존되는 쪽으로 보존관리가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즉, 소쇄원의 지정 사유가 자연물로서의 정원이라는 대상물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그 안에 이미 조성된 식생이나 물길이 16세기 조성된 원형 그대로 생식하도록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소쇄원은 우리나라 선비의 고고한 품성과 절의가 엿보이는 아름다운 정원으로, 조선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정원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정원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들, 즉 붙여진 명칭, 정원이 구성된 형태 등 그 인위적 계획성과 디자인이 고려되어서 보존관리가 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체계가 잡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소쇄원의 16세기에 심어졌던 식생 그대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소쇄원의 지정가치를 보여주는 부분들이 지속될 수 있도록 보존관리하는 행위가 우선을 가지게 된다.

즉, 가치 기반으로 분류를 할 것인지, 대상 기반으로 분류를 할 것인지에 따라서 지정 이후에 취하는 보존관리 정책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전통마을을 건물이라는 대상물 형태로 분류하는지, 오랜 시간동안 사람이 계속해서 정주해 온 생활상이 반영된 공간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여 지속적으로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쪽으로 보존정책을 펴는지는 그 후 관리행위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과 같다.

원형 논쟁이 그 힘을 잃어가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다. 인공적이든 자연적이든 그 어떠한 대상물도 원래 있었던 그대로를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것이 유산의 지정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보다는 과연 소쇄원이 정말 조선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정원이라는 명제가 사실인지 아닌지를 판명하는 진정성의 검토, 그리고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소쇄원의 어느 부분이 조선시대 정원의 모습을 보여주고, 하나하나의 요소들이 어떤 식으로 결합하여 정원으로서의 구색을 갖추는지 그 완전성을 명확하게 정리하는 것으로 발전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이미 보존관리 행위는 우리나라의 현장에서도 상당 부분 가치 기반 접근으로 이행해 가는 중인데 이것이 지정체계와 합치하지 않아 어려운 점이 있었는바, 이런 부분들이 새로운 법의 분류 기준에서 정리가 좀 더 확실시 되었으면 좋겠다.


2. 재화적 의미에서 탈피하여 원천자산화하는 것이 목적인게 성립하는가?

자료집 설명 제공: '문화재'를 '유산'이라는 명칭으로 변경하는 것은 재화적 의미에서 탈피하여 역사와 정신까지 포함한 유산 개념으로 변경 확장하여, 계승과 전승 의미 확대, 공동체‧지역발전의 원천자산화, 국민친화적‧포괄적 미래유산 보호 등 정책기능 대전환의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문화재에서 유산으로 명칭을 변경하면 한자어 조합으로 재화를 의미하는 “재”가 탈락한다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경제, 지역활성화의 관점에서의 의미와 효과가 엄청나게 강조되고 특히 기본법 안에 산업육성이라는 항목이 별도로 설치될 만큼 산업화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 기존 법률과 비교했을 때의 눈에 띌만한 변화인데, 이게 과연 재화적 의미를 축소하는 것일까? 오히려 국가유산의 재화적 가치, 자산성을 더 높이는 것으로 논리를 구성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원천적으로 국가유산은 더 많은 재화를 파생시킬 수 있는 기본자산이라서 그 자체의 물성을 재화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내포된 가치를 자산화한다는 것으로 헤드라인을 잡았어야 앞에 말한 가치기반 접근법과의 일체성을 이루는 등, 그 효과가 더 크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해야지만 눈에 보이는 경제적 이득을 가진 개발행위를 현재 문화재 대상물의 경제적 이득과 일대일로 비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대상물인 유산 안에 내재된 원천 자산적 가치를 계산해서 비교하는 것으로 접근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3. 같은 설명문 안에 계승과 전승 의미 확대라고 써 있다.

여기에서 계승과 전승의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계승을 하고 전승을 하는 것에 행위적 차이가 있는 것인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설명이 제공되지 않는다.

워낙 국제기준에 맞추어 틀을 개선한다고 설명이 여러 번 반복되어 있어 이 단어들의 선택이 혹시 국제협약 상에서 쓰이는 preservation, conservation, protection, safeguarding의 단어들과 어떤 식으로 부합을 하고 대응을 하는지 궁금점이 일어난다.

앞으로 논문 열심히 쓰라고 생각거리가 많이 던져져서 좋은 건가.


***


이 글은 쓴 조유진 선생은 이크롬 ICCROM에서 일한다.

오랫동안 세계유산에 간여하며 언제나 heritage를 실무로, 또 이론으로 이런 문제들을 고민한다.

이번 국가유산기본법이 탑재한 형용모순들을 깊게 찔렀다.

대문 제목은 내가 임의로 부쳤으며, 글쓴이 본인의 제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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