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 갈아넣은 K컬처기획단장 3년을 만땅으로 채우고선 나한테 두 가지 길이 있었다.
하나는 문화부 일선 기자로의 복귀요
다른 하나는 기타의 길이었다.
저짝에서는 혹 내가 전자의 길을 생각하지 않나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또 내가 내 인사권을 행사하지는 못하는 까닭에 나로서야 가라는 데로 갈 수밖에 없지만
그 자리서 후자를 선택했고, 그런 의사가 반영되었는지 암튼 내가 원한 데로 낙착했다.
앞날을 어찌 알겠는가? 다만 내가 이 자리를 선택할 때는 이 자리에서 끝내고 싶다는 생각만큼은 확고하다.
해고에 앞서 17년간 몸담은 문화부 기자생활, 더 구체로는 문화재 기자는 그것을 마무리하는 모양새가 좀 우습기는 했지만, 어차피 끝내야 할 시점이었다.
그러면서 다시는 그 일선기자로 돌아올 날은 없을 것이라 다짐했고 현재까지는 그리 굴러간다. 그 뒤 내가 문회부로 복귀하기는 했지만 문화부장으로 만 2년을 채웠을 뿐이다.
그걸 더 하라 했을 때 이미 심신이 망가져 기절초풍하고는 도망갈 궁리로 잔머리 굴려 생각한 것이 K컬처기획단 창설이었다.
그 3년 중 진짜로 1년은 팽팽 놀았다. 무엇보다 몸이 너무 망가져 있었기 때문이다.
길이 자꾸 옆으로 샌다.
그 무렵 나는 2005년에 폐쇄한 블로그 문을 다시 열었다.
물론 내가 여전히 연합뉴스 기자직 타이틀을 유지하는 이상 내가 내 생각 마음대로 뇌까리는 듯 해도 그것이 주는 규제 억제가 있어 보이는 것만큼 나를 다 드러내 보이지는 못한다.
이 블로그가 누적 방문 300만을 돌파하고 조만간 오백만대로 올라설 것이다.
혼자서 북치고 장구친 예전 블로그와는 달리 보다시피 이번 블로그는 필진이 두툼하다.
지금 내 고민은 그 확장이며, 또 지금은 준비단계지만, 또 그 단계 초기에 들어갔지만 나는 새로운 언론을 창설한 구단주다.
내 꿈은 이런 블로그형 언론의 정착이다. 그 성공 보기도 많고 어쩌면 그런 점에서 내가 일전에 시도한 블로그도 개중 하나였다.
폐쇄직전 누적 방문이 물경 천오백만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대문 간판까지 The HERITAGE 라고 바꾸어 달았으며, 로고 제작도 추진하려 한다.
조만간 체제 정비를 거쳐 예서 쓰는 모든 글은 인용 서식도 붙일 것이다. 이건 필진 중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신동훈 교수께서도 강력히 요청한 사안이기도 하다.
지금은 옥석이 혼효하는 느낌도 있지만, 블로그가 지닌 장점이 그것 아닌가 하고 위로 중이다.
이를 통해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은 언론인 발굴이다. 구체로는 헤러티지 분야에 특화한 언론인을 양성하는 창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실로 간절하다.
그런 점에서 몇년 간의 지난 실험이 썩 보람없지는 않다고 나는 보거니와, 또 본인들 생각이 다 다르겠지만, 이 블로그가 아니었으면 어쩌면 덜 알려졌을 신진을 발굴하는 일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바다.
물론 이걸로 돈도 벌었으면 좋겠지만, 그건 내가 퇴직 이후에 본격으로 실험해야 하는 사안이라, 퇴직까지 미뤄둔 상태임을 밝혀둔다.
혹 아는가? 그때는 필진께 원고료를 원천징수하고서 지불할 날도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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