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인가? 나는 역사를 세계사의 시야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수천년전 고대라 해도 세계사의 시야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사는 파동이라 했다. 이쪽과 저쪽이 설혹 직접 접촉이 없다 해도, 그것은 파동이라 저쪽 끝에서 파도를 일으키면 그것이 이쪽 끝까지 영향을 미친다 했다.
방금 전에 《사기史記》 대원大宛열전을 통독했다. 그 유명한 장건張騫이 주인공인 서역西域 열전 중 하나다. 이 열전을 읽기는 실로 오래만이라 나로서는 십년도 더 지난 일이 아닌가 한다.
널리 알려졌듯이 한 제국은 장건 이전에는 서역 각국과 직접 교통이 없었다. 사막에 막히고, 히말라야 산맥이니 천산산맥에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이것이 장건의 서역 사신행을 필두로 순식간에 서역 각국과 통교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대원열전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이 장건 이전에도 세계는 끊임없이 교통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군대가 가지 못하는 길도 장사치는 간다. 장건이 저 멀리 서역에 갔다가 그쪽 시장통에서 놀란 것은 중국의 물산이 유통된다는 사실이었다.
역사는 파동이다. 한 제국이 월지를 정복할 때 그 논리는 흉노의 우익을 끊고자 함이었다. 오른팔을 끊어버린다는 말은 흉노가 세계와 통하는 길 한쪽을 단절함을 의미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흉노가 세계와 통하는 창구였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시기, 흉노의 저 먼 반대편 동쪽 국경 접경지대에서 한 제국은 같은 전쟁을 일으켰다. 흉노의 우익을 쳤으니 좌익 역시 단절해야 했다. 그 좌익을 단절하고자 한 전쟁이 위만조선 정벌이었다.
위만조선 위치는 내 보기에는 평양이 아니다. 하지만 그 위치가 평양이건 아니건 중요한 것은 위만조선은 한반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정치체였다는 사실이다. 2천200년 전 한반도는 이미 세계사의 일원으로 당당히 그 한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세계사다. 정체도 없는 국사를 집어치워야 하는 까닭이다.
(2016.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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