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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썩은 갈치와 고등어가 외부와의 소통이었던 고향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1.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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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생을 돌아보니 국민학교 졸업할 때까지 내가 지금은 김천시로 편입된 금릉군 대덕면 언저리를 벗어난 적은 거의 없었다.

너댓살 무렵 아버지와 큰아버지를 따라 고모님이 사는 창원을 다녀온 일이 딱 한번 김천을 벗어난 경험 전부였다.
대덕면조차 벗어난 적이 거의 없는 듯하다.


 

내 고향은 한반도 내륙 정중앙 소백산맥 기슭이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인근 지례면과 인근 거창군 쪽으로 더러 진출하기도 했으니 학년 초 전과를 사러 가거나 당시에는 축구에 미쳤을 때라 이쪽 놈들이랑 축구 시합한다고 더러 대덕면을 벗어났으니 툭하면 거창 안의로 넘어가거나 지례로 가서 축구 한 판 하고 왔다.

중학교 3년 내내 내가 김천을 벗어난 적은 두어 번 있다고 기억한다. 무슨 일로 그때 형님을 본다고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었고 3학년 때인가 수학여행을 남해안으로 다녀온 일이 거의 전부다.

김천 시내로 유학한 고등학교 재학시설 3년 역시 김천을 벗어난 적은 거의 없다. 김천에서 범위를 더욱 좁혀 대덕 얘기를 하고자 한다.

 

 

저기가 내 고향이다. 바늘 꽂을 데도 없는 산촌이다. 

 



내가 내 삶의 영역 전부로 알던 그 좁은 대덕은 사방이 통로가 막혀있었던 듯하지만 내가 모르는 사이에 끊임없이 외부와 교통했다.

비록 5일장이기는 했지만, 그리고 그 통로가 물물교환 형태이기는 했지만, 나아가 풍성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식탁에는 썩어문드러지고 소금이 절반인 고등어나 갈치 반찬이 오르기도 했고, 그런 가운데서도 식구들 생일 날이면 미역이 오르기도 했으며, 멸치 반찬도 가끔씩은 구경한 기억이 있다. 5일장을 나서면서 아버지는 이들과 물물교환할 꺼리들을 싣고 떠났다.

내가 어린 시절 단 한 번도 떠나 본 적 없는 대한민국 경북 금릉군 대덕면은 그렇게 비록 좁은 통로로나마 세상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었다.

내가 이를 얘기함은 역사 역시 이렇게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16.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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